사랑, 잊은 지 오래다
사랑 같은 거 잊은 지 오래다
영혼을 빼앗긴 듯한 지독한 사랑도
봄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그런 사랑도
끝내는 모두
과거를 회상하는 늙은 작부의
뻔한 사연처럼
그렇고 그런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
사랑은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허기에서 오는 것
허기를 때우기 위해 사랑을 하기에는
뻔한 사연에 비해
거기에 메인 인생이 너무 무겁지 않던가
그리하여 나는 사랑을
구석진 독방에 감금시키고
종신형에 처한다
그리고 말한다
시시때때로 탈옥을 시도하는 독방 문을
등으로 밀고 서서 말한다
사랑 같은 거 잊은 지 오래다
- 전유경 시집 <꽃잎처럼 흩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