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며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바지 아랫단이 고단하게 튿어졌을까?
어떤 슬픔이 있었기에 눅눅하게 젖어 있을까?
세제 한 스푼에 표백제를 풀어 넣고
고단함을 지워내려 애쓰지만
걸어온 길은 무거운 모래주머니 달고 온
자갈길 뿐이었으리라
산맥처럼 툭툭 불거진 힘줄 속
어금니 깨물던 시간이 돌아 나가
기름으로 엉긴 하수구 동맥경화
숨 쉬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여름 보내고
세탁기 안에서 가을 유연제를 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