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에서
- 아버지에 대한 기억
늘 이맘 때면
등 뒤로 허옇게 서리가 일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가는 등뼈 사이로
깊이 불던 바람, 아버진
어김없이 그 바람을 타고 다녔다
한 차례씩
계절 끝에 바람이 딸려 올 때면
아버진 긴 날을 개처럼 떠돌아 다녔고
밤이 짧아질 때 쯤이면
한결 낯설고
손님같은 뚜벅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폭폭한 닭살점 같은 북어를
들기름에 달달 볶으시던 어머니는
마침내 그 해 봄이 다가기 전 비녀머리 풀러 지지고
홀홀 예전의 아버지처럼 떠나셨다
해만 지면 아버진,
밤새 간헐적으로 울어 대던 뒷산의 산짐승마냥
꺼이꺼이 울음을 토하고
나와 꺼멓게 비틀린 동생은
벽장 속으로, 부엌 구석으로, 사랑방 장농 뒤로
들쥐처럼 숨어다녔다
언제부턴가 이맘 때면
무쇠솥 앞에서 홀로 군불을 때시던 내 어머니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이마에 얹혀 굵은 주름을 잡던
아버지의 서늘한 서릿발 마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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