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그릇 같은 여자
최순옥
성형 틀 속에서
또박또박 찍혀 나오는
플라스틱그릇 같은 여자
관습의 독소로 시들은 꽃을 안고
먼지 앉은 유리구두를 꺼내 신은 채
가을 속으로 나선다
노란 물감 풀어내 붓질하는
바람의 장난에 멀미난 그녀는
저무는 가을, 길 위에 서서
가슴에 얹힌 권태를 토하지만
비우지도 못하고 깨어질
그릇의 하찮음이여
뒤 밟던 어둠이 앞서갈 때
구겨진 옷자락에 베어 든
낯선 하루의 냄새를 툭툭 털며
잠시 닫아 둔 일상의 문 앞에
어제처럼 서있다.
2004, 10. 16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