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선혈처럼 골목마다 흥건한 오월의 아침
붉은 혀같은 잎들을 하나씩 밟으며
이제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를 나는
생각했다
탄탄한 꽃봉오리로 하늘을 밀던 그 눈부신 힘은
흔적도 없고 잎들은 다만 가만 누어
한 낮의 태양빛을 차마 담아내지 못한 채
시들고 있었다
장미가 아름다움 그 하나만으로
거룩하던 날들이
얼마였는지 부신 태양빛을 등지고
하얀 담벼락에 몸을 부리고 서서
여자는 어림해 본다
강물이 흘렀다
시간 속으로 강물이 흘러갔다
꽃도 여자도 강물에 잠잠해지고
그러나 여자는 담장을 떠나가지 못하여
오래 기대서서 발밑에 짓이겨진 핏빛의 꽃잎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