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포시 햇살 내리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붉은 벽돌담을 흘러 내리기도 하고
검은 아스팔트를 안고 걸어 갑니다.
햇살은 어디든 내려 앉아 얼굴을 부비는데
님께선 바람길 멀어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십니다.
햇살 번지기 전 뿌연 아침을 님과 만나고 싶어서
빗질 미처하지 못 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립니다.
아릿한 마음으로 흘러드는 님의 소리는
길 멀어 오시지 못함을 못내 미안해 하십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아직은 잠에서 덜 깬 얼굴을
님과 마주 할 수 없어 두 손으로 감싸 봅니다.
풀 빛 고운 산자락에 걸린 햇살 한조각이
웃음을 흘리기에 님의 얼굴인가 눈을 돌립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님은 계시지 않을 지라도
전 머리로 마음으로 님을 기억해 내곤 합니다.
때때로 형상이 그려지지 않아 울고픈 마음이면
눈썹달 같은 모양으로 절 향해 달려 오시는 님을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 할 수가 없습니다.
종일 내리는 햇살이 미워지는 날입니다.
볼을 스치며 앙살을 부리는 바람도
고향길 달리는 걸음을 재촉하는 구름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 엄살을 부리는 나뭇잎도
오늘은 오늘은 미워지는 날입니다.
2002/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