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봄이었다--
염원정
해를 넘기는 오랜 진통 끝에
어머니가 깊고 신비한 숲을 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날개 파닥거리게 꺼내주던
눈부신 내 생일이
새털구름 둥둥 유년으로 건너가
잠결에 요를 적시고
화들짝 놀라 깼던
그 때도 봄이었다.
온 방안에 박달나무 단내를 풍기는
풍금을 처음 들이고
도 레 미 파 솔 라 시
그 이쁜 것들 하나 하나 깨우느라
잠을 설치던 소녀
건드리면 하나같이
강하게 튀어 오르는 음표로
겁도 없이 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첫사랑에
깊이 상처난 자리
낮은 음자리표 되짚으며 되짚으며
나오지도 않는 젖으로
사생아 같은 또 하나의 사랑 곱게 키워내
진달래 혈혼으로 첫날밤 이부자리를 수놓던
그 때도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