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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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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BY 염원정 2002-01-16

--사랑니--

                        염원정

 

어릴 적 처음으로 이를 빼던 날
실에 묶인 내 이는
할머니의 주술을 들으며 지붕에 얹혀졌고
눈 깜짝할 새
내 천체엔 큰 구멍이 생겼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떼 한번 쓰지 못하고
새는 말 구멍을 감당하느라 힘들었지

할머니,
까치가 정말 새 이를 가져올까요?
자꾸 묻는 것이 귀찮았던지
할머니는,
까치가 은혜를 갚는다는 내용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이야기를 빠져나오며
또 물었지
언제 내 이를 가져올까요?
그러나 할머니는 코만 골고 있었지

답을 못 들은 나는
쉬 잠이 오지 않았고
눈 두는 곳마다 달빛이 곤두섰지만,
할머니의 코고는 소리를 무기삼아
네모난 벽지의 모서리 무늬부터
천장의 네 귀까지 잘라내고
창호지가 발라진 격자무늬 문살에 난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틀어막을 수 있었지
그러나 이가 빠져나간 자리
푹 꺼진 웅덩이는 메울 수가 없었지.

급기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고 날 데 없이 제 숨에 매달린
휘둥그런 생면에게 술래처럼 말했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치맛자락 보일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엇인가 찾고 있는
시선(視線)! 시선(詩仙)?
나는 술래이면서도 술래가 아니었지
장독대에서 엄마의 자궁 같은
큰항아리 속에 나를 밀어 넣고는
꼭꼭 숨었지
꼭꼭 숨었어

나를 떠난 젖니와
나를 잃어버린 세상을 궁금해하며
그곳에서 나는
깜빡 잠이 들었던 것도 같고
무슨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어느 아침에 눈뜨니
할머니 말대로
예쁜 새 이가 까슬까슬 돋더니 자라더니 ...
항아리가 조금씩, 조금씩 작아졌지...

어디를 둘러봐도 숨을 곳 천지였던
내 유년 시절은
코 묻은 동전으로 돌 사탕을 사 입에 넣고
단물 흘리던 거기까지인가
달달한 세월은 충치도 빨리 먹었지

빼고나면
뽑은 이 지붕에 던져줄 할머니도 없고
새 이 가져다 줄 까치도 없는데
사랑니 아프니 빼 달라 해놓고
후회했지,
정말 후회했어
뒤늦은 애정에 눈물 빼며
처음으로 이 빼던 그날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