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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BY ksw9003 2001-06-01


여름비

양철지붕위로 똑- 똑-
두어 방울씩
작은 철대문 닫아 걸기도 전에
제법 요란스러웠다.

어머니는 빨래 걷으라고 야단이신데
천연덕스런 계집아이는 봉선화 물들인 손톱이다.
후두둑
후두둑
네모난 우리집 마당이 한바탕 매를 맞는다.

텃밭 고춧대는 고집도 세지
그 모진 비를 혼자 맞고 섰다.
댓돌위로 타닥타닥 비가 곡예를 넘는다.
아버지 흰 고무신 안에 빗물이 고였다.

물받이 밑에 양동이는 배가 차서 든든한데
강둑에 선 버드나무는 머릴 감느라 수선이다.
늙은 감나무는 뒷뜰에서 꽃진다고 울상이고
사리나무 빗자루는 굴뚝 옆에 기대서서 낮잠을 잔다.

작은 창은 비풍경으로 가득하고
하늘은 한없이 우울한 기색이다.
좁다란 골목길에 왁자지껄 개구쟁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건 아름다운 추억뿐이다.
한참동안 마음을 적시는건 그리움뿐이다.

조그마한 기억속으로 어여쁜 비가 내린다.
스무해나 지나서 떠오른 아름다운 풍경
눈을 감고 소리와 내음만으로도 열살적으로 돌아가 버리는
찰라의 영상에 가슴을 열고 비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