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도대체 뭐라고하는지 이해가 되지않아 다시 한번 되물어보았다.
말없이 하룻동안 집을 비운 이유가.....뭐라고...?
"난. 사탕이. 싫다고!!!"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내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래는 거야 지금? 사탕이 싫다고? 응? 그게 이유라고? 말이 돼?
내 속을 그렇게 바짝바짝 태워놓고 아무렇지도 않게...아니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듯이
뚱해 있길래 일단 마음을 추스리고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물었더니 이런 황당한 대답을 하는 거다.
그러고보니....아...츄파춥스...
근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월요일 저녁, 식사하러간 일식집 카운터에 커다란 사탕바구니가 있었다.
마침 그날이 화이트데이라 여성고객들에게 무료로 사탕을 나눠준다구.
여직원들이 좋아라하며 사탕을 집어들길래 나도 마누라 생각에 슬쩍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었다.
우리 나이에 이런 거 챙기는 게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챙겨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처음 몇 번은 제과점에서 포장된 사탕을 두어번 샀던 거 같고....그 다음은 글쎄...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아내는 발렌타인데이라고 매년 꼬박꼬박 쵸콜렛을 주긴했다.
그리고 한달 뒤면 여지없이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리곤 해서 줬던거 같은데...
그게 뭐 중요한 날이라고 이 바쁜 내가 그런거까지 기억하고 살아야되나 말이다.
"화이트데이는 사탕 주는 날이라며? 근데 뭘? 내가 뭘 잘못했냐구?"
말없이 아내가 날 째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후두둑 흘리는게 아닌가.
아...정말 뭐가 뭔지...
"자기 정말 너무한단 생각 안들어?"
"어...?"
"벌써 15년이야...15년동안 난 사탕보다 쵸콜렛이 좋다고 누누히 말했고."
"아니...난...화이트데이는 사탕 주는 날이..."
"도대체 몇 번 말해야 돼. 응? 난 사탕보다 쵸콜렛이 좋다구! 그러니까 사탕말고 쵸콜렛으로 달라구
매년...그렇게 말했는데... 어쩜 그러냐? 응? 도대체 내 말은 듣는거야 안듣는 거야?"
"........."
"게다가 작년엔 뭐랬어? 내가 화이트데이에 쵸콜렛 사달라니까 분명히 그랬지?"
"........?"
"알아서 준비할텐데 내가 사달라고 노래부르니까 사주기 싫다고...그래서 안준다고...
뭐? 내가 아무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해주신다고?"
내가 그런 소릴 했던가?
아...맞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깜빡했는데 하도 별 일 아닌걸로 짜증을 내길래 그렇게 대꾸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올 핸 내가 아무말 안하고 기다려봤어. 설마 온 세상이 화이트데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까 싶어서."
".........."
"근데.....어디서 얻어온 사탕 두 알로.....그것도 츄파춥스라니..."
".....츄파춥스가 왜.....?"
좀 느닷없긴 하지만 왜 그리 츄파춥스가 싫은지 이 와중에 그게 또 궁금하다.
어이없다는듯 다시 나를 째려보는 아내.
"휴....당신이랑 무슨 말을 하겠어...어쩜 그리 무심하냐.
작년 화이트데이때 내가 승민이 반 친구들 나눠주라고 츄파춥스 150개짜리 한통 사놨는데
승민이가 부끄럽다고 안가지고 가는 통에 1년 내도록 그 놈의 츄파춥스 지겹게 달고다니다
저번 일요일 옆 집 꼬맹이들한테 남은 거 다 나눠주고 이제 겨우 몽땅 처분했다고 좋아했던 거
기억 안 나?"
헉....그러고보니 아내가 이제 겨우 츄파춥스에서 해방이라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사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처치 곤란이라며 간혹 아이들이 보이는 족족 선심쓰듯
사탕을 나눠주곤 했는데도 우리집 냉장고 서랍칸엔 지퍼백에 담긴 사탕이 내도록 있었다.
간혹 사탕을 물고 다니는 아내를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사탕때문이라니......
"미안....내가 요즘 정신없이 바쁜 거 알잖아...좀 이해해주라.
우리 결혼기념일도 아니고 당신 생일도 아닌데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일일히 다 챙기냐?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우리 근사한데 가서 외식 한번 하자.응?
내가 내년엔 진짜 쵸콜렛 맛있는 걸루 사줄께...화풀어..응?"
아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안방으로 건너간다.
솔직히 내년에도 잊지않을 거란 자신은 없다.
도대체 이 일이 그렇게 화낼만한 일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당장 내일 아침 밥상을 위해서라도 이만 백기를 들고 순순히 항복하는 게 낫다.
아내의 남은 화를 마저 풀어주기 위해 얼른 뒤따라 안방으로 건너가봐야겠다.
정말 여자의 마음은 살아도 살아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