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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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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엄마


BY 이룬담. 2010-05-12

 

“이 미친노무새끼 ! 이럴 줄 알았어 !!!”

 

다섯 살 아들 놈이 대접에 가득 퍼놨던 동치미 국물을 엎었다. 밥 먹다말고 티비주인공 파워레인저 흉내를 낸답시고 숟가락을 들고 있던 팔과 다리를 요란하게 휘두르더니 팔꿈치로 밥상 위 동치미 그릇을 냅다 갈겼다.

밥상 위에서 한 번 치솟은 동치미 그릇은 길쭉하게 썰어놓은 무와 초록색 무청을 뱉어내며 방바닥으로 요란하게 떨어졌다. 동치미 국물은 방바닥은 물론이고 쇼파 밑, 거실장 서랍, 그 옆에 바느질 그릇, 그 위 작은 어항 유리에까지 튀겼다.

 

여자는 이미 아들 놈이 파워레인저 흉내를 내겠다고 어깨를 들썩일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분명 반찬 그릇 중 한 가지는 엎을 것이다, 재빨리 상 위를 훑어봤다. 감자볶음이라면 치울만 하다. 장조림 뚜껑을 닫아놓을까, 취나물 무침은 그나마 쏟아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동치미 그릇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릇이 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여자는 짜증이 솟구쳐 신경질을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들 놈은 숟가락을 든 채 놀란 눈으로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는 제 흥에 겨워 장난을 쳤을 뿐이지만, 엄마는 그렇잖아도 바쁜 살림에 안해도 되었을 번거로운 뒤치닥거리가 순식간에 쏟아진 것이다. 여자는 꼼짝않고 서 있는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들어올려 욕실에 떠밀어 넣었다.

 

그리고 걸레로 쇼파 밑, 거실장 서랍을 닦았다. 어항 속에도 국물이 튀어 들어갔다면, 어항 물까지 갈아줘야 한다. 아들 놈 내복바지까지 몽땅 젖었기 때문에 그 것도 빨아야 한다. 아이가 늘 손에 들고 다니는 털 북실거리는 너구리 인형도 동치미 국물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바느질 그릇에서도 시큼한 동치미 냄새가 났다.

 

“내가 미쳐, 저런 자식이 대체 어느 구녕에서 태어난거야. 니미 씨발!”

 

서른 밖에 안된 여자는 요즘의 쉰살 여자들도 잘 내뱉지 않는 상스러운 욕이, 자신의 입에서 익숙하게 터져나오자

바닥을 닦던 걸레를 뭉쳐 입 속에 구겨넣었다. 여자는 어릴 때 징글맞게 들었던 이 욕설이 자신의 입에서 거리낌없이 터져나오자 심장이 저릿저릿 했다. 동치미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 뭉치를 물고 이를 악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일곱 살의 어린 여자는 밥을 먹고 있다. 다섯 살, 세 살의 동생들도 앉아 있다. 동치미 국물을 퍼 먹다가 식탁 위에 뚝뚝 흘렸다. 엄마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쏘아본다. 무를 건져서 입으로 가져가다가 옷 위에 떨어뜨렸다. 기다렸다는 듯 욕설이 들렸다.

 

"이 미친년! 이럴 줄 알았어 !!"

 

엄마는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여자를 "미친년!"이라고 불렀었다. 미쳐야지만 저지를 수 있는 큰 잘못도 아닌데 여자의 엄마는 일곱 살의 어린 여자가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멀쩡한 '정희'라는 이름을 두고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여자의 엄마가 집에서 부업으로 하던 뜨개질 도구들을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 놓지 않았을 때나 벗은 양말을 아무데나 놓았을 때나 연필 또는 지우개를 잃어버렸을 때나 여자의 엄마는 어김없이 "이 미친년! 이럴 줄 알았어!!"라고 소리 질렀다.

 

 심지어는 집 밖에서 어린 동생들과 놀다가 수도관 묻느라 파놓은 땅바닥에서 넘어져 무릎이 깊게 패인 날도 어린 엄마는 어린 여자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년! 왜 엎어지고 지랄이야!"

어린 여자는 깊게 패여 살점이 떨어져나간, 피가 철철 흐르는 무릎보다도 엄마한테 맞은 뒤통수가 더 아팠다.

그런 후에는 뒤통수보다 엄마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여자의 자아가 더 아파서 분노가 치밀었다.

"씨발, 땅이 파헤쳐져 있었는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일곱 살의 어린 여자는 엄마에게 그렇게 반항했다.
그러나 여자의 엄마는 더 큰 목소리로 "이 미친년이!!"를 세 번쯤 반복하더니

방으로 뛰어들어가 뜨개질 바늘 다섯 개를 한꺼번에 쥐어들고는 종아리를 미친듯이 후려쳤다

 

"내가 미쳐, 저런 년이 대체 어느 구녕에서 태어난거야. 니미 씨발!”

 

 그 순간 만큼은 엄마가 미친년이 된 것 같았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무릎은 혼자 피가 멎고 새 살이 돋아 아스팔트 땜빵하듯 볼록하게 아물었다.

무릎의 흉터는 엄지손톱만하게 남았고 여자는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남 탓을 이유로 자기 방어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