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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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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BY 황영선 2007-01-31

 밤 10시가 될 때까지 개그 프로를 보고 웃고 있는 딸들의 뒷모습에 왈칵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슬그머니 거실을 나와서 현관문을 밀었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멀리 가지 말거래이. 자빠진대이."

 엄마는 내가 몇 살인데 지금 이 나이에 자빠져 봐야 내가 잃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보름달모양이다. 가득 찬 보름달이 약간 기운걸 보니 오늘이 벌써 음력 4월 15일이 지났었나?

  '며칠 있으면 윤진 아빠 기일이 다가오는구나.'

 복실이가 잠이   들지 않았던지 대문 앞의 제 집에서 컹컹 짖었다. 요즘 복실이가 짖는 소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보는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당에서 한참 달을 바라보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두 딸과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자려고 방으로 들어 간 후였다.

 아이들의 이불을 다독여 주고 나는 잠을 자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주무시는 엄마의 몸이 이불아래에서 조그맣게 보였다. 나는 엄마 옆에 누웠다.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는 부엌에서 나는 듯하기도 하고, 생활에 찌든 것 같기도 한 엄마냄새가 맡아졌다.

 "엄마 큰 고모 얼굴 생각나나?"

 자리에 누워 엄마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누우 말이고?"

 가는 귀가 먹어 가는 엄마는 왼쪽 귀가 어두워, 오른 쪽으로 돌아 누우면 사람 말을 잘 알아 듣질 못했다.

 그제야 엄마가 몸을 돌려 바로 눕는다.

 "뭐라고? 야가 갑재기 큰 고모는 와?"

 "아이다. 갑재기 할매가 하던 말이 생각나서 말이다."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였지만, 엄마의 입을 통해 한 번도 보지 못한 고모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니 고모 말이재, 첫째 고모, 정말 이뻣재. 나오 매뻔 못봤다. 너거 할매 말씸이 동네 사나들 애간장 다 녹였다 카대."

 "진짜가? 할매가 고모캉 내캉 많이 닮았다카던데......"

 할머니는 내 얼굴을 쭈글탱이 두 손으로 감싸 쥐고서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셨다.

 "씰데 없는 소리! 니캉 너거 고모캉 닮아서 우얄낀데, 됐다마! 너거 할매가 죽어서도 나를 괴로피는구마! 자래이. 내일 출근해야  안되나. 엄마도   졸립대이."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금방 들려 왔다. 나는 몸을 반듯하게 누워 달빛이  비치는 천장을 보았다.

 진달래가 앞산 가득 피는 봄이 되면, 할머니는 서러움에 젖어 한복 저고리 고름을 적셨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는 앞산의 진달래도 보이고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도 보였다.

 "집비 쪼매만 있었시도, 너거 고모  시집 안 보냈을낀데...... 입 하나 덜라고 보내떠마, 고마 그 집배서 도망 안 나와 뿌릿나, 진달래 내음을 못 참을 꺼는 뭐꼬? 참말로 우새시럽꾸로 , 동네 사람허고 눈이 안 맞아 뿌릿나, 죄인이 따로 없따. 우리 집비 죄인 집빈기라. 니 고모 말이대이. 도둑년이대이. 나머 서방을 도둑질 한 죄인 아이가. 으흐흐."

 욕을 퍼붓고 계셨지만 눈물을 감추기 힘들었던 할머니는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셨다.

 "인미야. 잘 살아야 한대이. 너거 고모꺼꺼정 잘 살아야 한대이. 알았재?"

 울음 끝에 어린 손녀딸을 다잡아 앉히고 다짐을 받고는 하시던 할머니셨다. 잘 살아야 한다는 그 말씀은 처자식이 딸리지 않은 남자를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저 어디 다른 세상에서 또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이다. 나 때문에. 그 옆에 아버지도 계실 것이다. 틀림없이 두 분은  나 때문에  울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세상에 간 두 분한테 꼭 말씀드리고 싶다.

 '걱정하시지 말라고,'

 그 말씀을 꼭 해  드리고 싶다.<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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