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죽이겠다. 니가 날 그렇게 무시해? 도대체 넌 뭐야? 난 널 위해 애까지 낳아준 몸 아냐? 니가 나보다 잘난게 뭐냔말야. 난 니가 뱉는 한마디 말조차 들을 기운이 없어. 그냥 여기 흉기가 하나 있다치자. 도독이고 뭐고 다 무시해도 좋을 그게 있다치자. 난 이순간 널 미워해. 그 흉기로 널 갈갈이 찢어죽이고 싶도록 넌 나의 악마야. 넌 참 이기적이야. 그치. 난 너랑 십년을 살아왔어. 아무 불평도 없이. 아니. 불평은 있었지. 허나. 절대 넘 한테 너의 헛점들을 드러내놓고 얘기해본적은 없어. 맹세코. 난 바로 이순간부터 널 남이라 생각할래. 너와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야. 기억해둬. 오늘밤 넌 나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버릴꺼야. 용서해줘. 제발. 난 한번 결정한 일은 번복하고 싶지 않아.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 난 그렇게 독해. 기억해줘. 난 널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냥 애들은 의무야. 내가 너에게 배푼 하나의 은혜. 난 너을 남으로 여긴 이 순간부터 그 애들도 나에겐 아무것도 아냐. 난 그저 오늘밤 싸늘한 시체로 너의 곁을 떠나련다. 이제 안녕. 니가 날 죽인거야.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어.
휘영청 상현달이 중천에 가만히 여자를 주시한다. 자정 넘긴 시각 여자는 왼손에 두어번 겹친 영자신문을 들고 있다.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빛나는 방죽. 수초가 제법 자란 못엔 드문드문 연잎이 보인다. 넓은 연잎사이로 짙은 봉오리가 쭈빛 고개를 내민다. 초저녁 공원은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풀벌레소리가 제법 거나하게 들릴즈음은 사람들도 다 제집을 찾아든다. 여자는 눈가에 눈물자국을 채지우지 못했다. 울다 입술을 깨물기도하고 가로등 불빛 너머의 밤 풍경에 한껏 매료되기도 한다. 마음이 두마음. 머리를 양갈래로 묶듯 마음도 매듭진채 축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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