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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과 꽃등심


BY 솜사탕 2004-07-10

메일을 그에게 보내고서 처음 며칠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마냥 즐거웠고 그후 며칠은 실망감으로 하루하루가 시시해보였고 그리고 그후 며칠은 생각없이 멜을 쓴 바보같은 내 손가락을 원망하는 맘이 가득했으며 그 후부터는 막연한 그리움과 기대감조차 시들시들해버렸다... 그리고는 한 2주쯤 지났던가보다..

 

나에게는 생소하지않은 이름으로부터 멜이 한통 왔었다.

명희수...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 가슴뛰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린다고 하던데 오히려 내게는 그 소리를 들을수있는 여유보다는 마우스를 클릭하는 손가락끝이 벌벌떨린다고 해야 더 옳을것같았다.  어떤 내용이 있을까. 만약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게 굳이 본인이 아니라는 메일까지 보내진않았겠지...

 

 

 

멜을 열어보았더니 이런 내용 있었다.

<서지애, 안녕? 오랜만이네..... >

 

 

 

그 멜을 읽는 순간 할말을 잊었다. 아마 반가움과 그리움보다는 너무나 짧은 내용에 더 놀랐던것같다. 그렇게도 할말이 없었을까. 아니면 2주동안 답장보낼 말을 생각하고 겨우 나온 결론이란것이 "안녕, 오랜만이네"란 말이었을까.

 

15년이란 세월동안 가슴 저 깊은 곳에 꽁꽁 얼려둔 사람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오래된 꽃등심 발견! 그냥 아무생각없이 밖에 꺼내놓았다.

 

상황1: 녹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운물에 넣어서 화끈하게 녹일지, 전자 렌지에 넣어서 급속해동을 시킬지, 그냥 시간가는대로 자연해동을 시킬지..

 

상황2: 해동이 된 다음에는 과연 진공포장의 효과로 다시 먹을수나 있을것인지 없다면 버릴것인지..

 

상황3: 그래두 일단 꺼냈으니 녹여서 구워본 후에 먹을지 못먹을지 판단을 해야 옳은거 아닐까...?

 

상황4: 만약 버려야하는 것이라면 꽁꽁 얼려져있는 상태에서 버릴것인지, 그래도 녹은후의 상태를 알수없으니 일단 해동시켜 상태를 보고 버릴것인지, 아니면 귀찮지만 구워보고 판단할것인지... 그러다가 먹을만하면 먹고... ㅋㅋ

 

상황5: 이것 저것 다 귀찮은데 그렇다고 버리기는 더 아깝고 먹지두 않을것을 왜 꺼내놓았던가 하는 후회스런 생각과 함께 도로 냉동실에다가 넣어두어야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자리야 좀 차지하겠지만 저 구석에 넣어버리면...? ^^ 그래두 꽃등심인데... ㅋ 그러다가 한참뒤에 생각나면 꺼내서 버리던지 말던지... 나중에 나중에 ...

 

 

 

마치 그가 한참을 꽁꽁 얼려진 꽃등심이고 냉동실이 내 맘인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먹을것인가 안먹을것인가.

안먹을것이라면 버릴것인가? 아니면 아까우니까 도로 냉동실 깊은곳에 넣어둘것인가?

먹을것이라면 어떤식으로 녹일것인가,

먹을려구 녹였는데 벌써 상태가 맛이 갔다면...? ^^;

녹여서 양념까지 쳐서 구웠는데 맛이 갔으면 어쩌지? 아까운 내 양념과 녹여서 굽는데 들인 정성과 시간들, 거기다가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두 판단하지 못하는 나의 시각과 미각, 그리고 후각... 음... 최악이군... ^^;;

 

 

추억속의 사람이 냉동실의 오래된 꽃등심으로 비유되는건 우스꽝스럽지만 그의 짧은 답멜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어떻게 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