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서두르지 않으면 3년만에 귀국하는 아들, 도착시간을 못맞출 지경이다.
남편은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채근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침애 위에 던져둔 상의를 입을 여유도 없이 후다닥 방을 나선다.
'정우 아빠...빨리 가요'
화요일 러시아워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로는 차들로 붐볐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면서도 차안에서 화장을 점검한다.
'그러게...10분만 서두르지..사람 참..'
-'서둘렀는데 아까 동서 전화받다 이렇게 된거지 뭘...차만 안막히면 늦지는 않을텐데...애 기다리게 하면 안돼요...어어..노란불!! 신호 주지 말고 지나가자'
'정우 애인 보면 내색 하지 말고 그냥 인사만 받어...응?'
-'그게 내 맘대로 되나? 아..봐야 알지..어떤 앤지..내가 뭐 멀쩡한 애를 싫다 하겠어요?'
'아직도 정우를 당신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어떤 앤지 보고 얘기하자니깐...대체 어떤 앤데 걔가 미리부터 이렇게 겁을 주냔말야...'
.......'엄마...나 애인이랑 같이 간다...엄마 나 믿지? 내가 좋다는 사람은 무조건 오케이라구 했다!!!' 예정보다 6개월 먼저 귀국한다는 일정을 알리는 전화에서 엇그제 아들의 전화를 불안한 듯 떠올린다.
(설마...노랑머리에 파랑눈은 아니겠지...설마...)
가까스로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있었고 숨 돌릴틈도 없이 이제 막 도착해 입국장 게이트를 하나 둘 빠져나오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하나하나 뚫어본다.
'당신 맘에 안들어도 절대 내색하지 마!! 응?' 남편은 못미더운 듯 정숙의 얼굴을 정면으로 주시하며 다시 한번 다짐받는다.
-'알았어요..알았어..나두 최대한 환영할꺼야...이렇게 하면서... 어서 와라..환영한다... 이럴꺼라구요'하며 쿡쿡 웃고 양 팔을 최대한 벌려 보인다.
이미 많은 승객들이 빠져나가고 하나 둘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사람들 수가 줄어가도 도통 보이질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정숙은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짐이 많은가? 늦네...'
목을 길게 빼고 보던 남편이 한마디 툭 내뱉는다.
그 사이 정숙은 분주하게 머리모양을 만지고 얼굴 화장을 확인하고 남편 옷 매무새를 잡아주고 있었다.
'어어...저기...저기...정우 온다'
- '정우야!!!!!'
정숙은 남편을 밀치다시피 하고 정우에게 달려간다.
- '어머...정우야..내 아들....어디 보자...정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내 안고 얼굴 볼 틈도 없이 아들과 정숙은 내내 그 상태이다.
'아버지도 좀 봐줘라...인사는 집에 가서 마져 하고...' 눈물까지 비치는 정숙을 남편은 얼른 추스린다.
그제서야 정우와 정숙은 마주보며 환하게 웃고 정숙은 정우를 안은 채로 정우의 얼굴을 두어번 쓰다듬는다.
-'너 애인 같이 온다며? 어디 갔니?'정숙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몇몇 아가씨에게 눈길을 준다.
'엄마!!! 휴~~~역시 오니까 좋다.. 아버지!!'하며 부자의 다소 어색한 포옹이 이어진다.
'그래..힘들었지? 너 같이 온다는 애인은?'
'아버지 엄마 기다리실까봐 먼저 나왔어요...걘 짐찾느라 좀 걸릴꺼야...'
-'아니...우리 기다려두 같이 찾아서 나오지..얘는...'
공항내 식당에서 아들의 여자친구를 기다린 지 20분이 지났다.
정우는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불안한 듯 정숙과 남편을 바라보며 '엄마..아버지...저 믿죠?'
'일단 보고 얘기...' 남편의 말을 자르며 정숙이 끼어든다.
-'지금이라도 말 해!! 혹시 외국여자니?'
다짐을 받던 정우의 표정이 환해지며 20미터쯤 떨어진 거구의 여자에게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