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제우스에게 어린양을 바치듯이 하얀 침대커버를 씌운
일인용 직사각형 침대위에 머리카락이 말끔히 삭발된채
잠시 지상으로 외출 나온, 아기천사가 오수를 즐기듯이
반듯이 누워 수면을 취하는듯한 얼굴이 보였다.
양손이 가슴에 모두어져 있는지, 목까지 침대커버가 씌여져
있는 목 아래가 두틈했다.
그녀가 누워있는 침상위 천장에는 빼꼭히 종이모빌이
메달려 비행하듯이 날고있고, 벽난로에는 불을 피웠던 흔적을
말해주듯 재가 쌓여 있었다.
노오란 창호지로 벽이 발라져 있어서 그런지 방안은 마치,
오후 석양이 물든듯이 황홀한 오렌지빛이었다.
죽은 시신을 보는듯한 느낌보다는, 어떤 행위예술가의
행위예술을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타불러 교수는 직감적으로 연쇄살인 사건의 냄새를 맡으며,
계속 녹화 할 수 있도록 텔레비젼을 조작한 후, 던지듯이
책상 한 귀퉁이에 놓아 두었던 두툼한 노란 봉투를 서둘러
뜯었다.비디오 테입 하나와 여러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은, 방금전 티비 화면을 통해서 보았던 같은 여인이
나체로 누워있는 침상 위 사진과, 천장에 메달려있는 종이모빌을
밀착 촬영한 사진, 그리고 방 입구인듯한 문 옆에 놓여져있는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나무의자 위에 놓여진 등산화를 찍은 것들이었다.
비디오 테입을 서둘러 넣고 버튼을 누르자마자, 로드먼 국장이 희끗한 흰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나타났다.
[케서린, 미안하다. 좋은 새해가 되길...흠흠흠!. 조금 어색하지만...
케서린, 우선 오해가 없었으면 해. 헤크먼 학장님과 나는 이 사건을
당신이 맡아야 된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건이 신고된 직후
촬영한 테입을 급히 발송했다.
당신을 이런 이유로 보고싶지는 않지만, 이 사건은 당신이 꼭 맡아 주어야
되겠다는것이 나의 믿음이고...자네가 이 테입을 보고나면, 아마도...
자네의 직감이 그 이유를 말해 주리라 믿네.
나는, 늘 당신의 곁에 있다.]
로드먼의 얼굴이 짧은 설명과 함께 획하고 사라지는가 싶더니, 화면은 그 시신이
누워있는 작은 다락방으로 바뀌었다.
타불러 교수는 사년전, 로드먼 국장이 자신의 곁을 떠나면서 했던,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지우려고 노력하듯이 잠시 눈을 감았다.
"케서린, 너의 정상은 어디야? 나는 늘 네가 나를 찿을 때, 거기에 있겠다.
콜로라도로 이직신청을 했었고, 오늘 떠난다."
눈을 떴을 때...
오렌지 빛이 황혼처럼 물든 작은 방 안에 건초더미를 쌓아올린 직사각형 단상을
하얀 커버로 씌운 그 재단같은 침상에 한 여인이 양 손을 젖가슴에 모둔채 두 다리를
가지런히 펴고 누워있는 나체가 보였다.
머리는 정갈하게 삭발 되어져있고, 성을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은 분명
지상의 사람이 아닌듯이 평화롭기만 한데, 양 손의 모양이 타불러 교수의
시선을 끌었다.엄지와 엄지, 무명지와 무명지가 맞닿도록 놓여져 있어서
마치 수행승이 참선에 든 것 같은 그런 모양으로 놓여져 있고,
음부의 음모도 깨끗이 면도되어 있었다.
성폭행 흔적이랄지, 몸 어느곳에 상처하나 없이 아주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는 인간이 태초 태어날 때처럼 신비로움과 평화로움을 풍기며
말없이 누워 미소짓고 있는듯 했다.
뒷산이 훤히 내다보일 정도로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한 탁트인 유리창엔 하얗고 얇은
커튼이 들이워져 약간 열린 문으로 세어드는 바람에 하늘거렸다.
바람을 타고 비행하듯이 나르는 종이모빌이 화면 가득히 들어왔다.
타불러 교수는 섬찟함을 느끼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종이모빌은 마치 인간의 몸뚱이같은 모양으로 접혀져 있었는데,
날카로운 메스로 두상을 목선에서 도려낸듯이 몸통에 두 팔과
두 다리를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타불러 교수는 화면을 고정시켰다.
분명히 그 종이모빌들은 인간의 육체였다.
두상이 잘린 몸뚱아리만 있는 인간의 육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종이모빌들이
그녀의 머리맡 천장에 메달려 비행하듯
창으로 세어드는 바람을 타고 날고 있었다.
마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 수 있도록
몸통만 남은 수많은 인간들이 모두 창문 방향으로 몸을 틀고...
그리고, 그녀가 누워있는 작은 다락방의 입구인듯한 문은 열려져있고,
문 바로 좌측으로 놓여져있는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나무의자위에는,
마치 그 시신이 생전에 신었었던지 여자 싸이즈의 낡은 등산화가
일어나면 곧바로 신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을 향해 놓여져 있었다.
방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예술같은 분위기였다.
타불러 교수는 비디오 테입을 두 번째 보다가, 로드먼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끼며 타불러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서서 삼층 다락방으로
향했다. 교직을 떠난 그녀가 두문불출하면서 의지했던 그 다락방으로...
천체망원경이 창가에 놓여져 있고, 큰 쿠션들만이 이리저리 놓여져 있는 작은 다락방.
그녀는 그곳에 들어오면, 늘 어린시절 고아원 수녀원의 뒷동산 공동묘지에 들어가는
것처럼 평안함을 느껐었다.
로드먼 국장의 얼굴이 자꾸 밟히는지 타불러는 중얼거리면서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절대로 이 사건을 맡지 않겠다. 절대로..."
안드로메다가 수소를 태우며 밝게 망원경 속으로 밀려들었다.
촛불처럼 별들은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발한다.
타불러는 잠념을 버리는 수단으로 하늘을 보았다.
소냐의 얼굴이 획하니 혜성처럼 지나는가 싶더니,
방금전까지 보았던 그 천상의 사람같은 미소를 한
여인의 얼굴이 스치고, 로드먼의 얼굴과 그의 주름살이 다시 타불러
교수의 눈 속으로 마구 밀고 들어왔다.
송년파티에서 느꼈던 현기증이 다시 이는가 싶더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타불러 교수는 지친듯이 털석 방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벽에 기대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오년 내내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