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lala님. 세상에 아직 팔팔이시네요.*^^*
말씀하시는 걸 봐서는 연륜이 느껴지던데...^^;;
어쨌던 들어오셨다면 잘 읽고 가셔요~~~
****************************************8
그 날도 어김없이 재란은 엄마를 도서관으로 불렀다.
[다큰 가시나가, 그것도 맨날 댕기는 길이 뭐가 무서버서 에미를 찾고 난리고! 니가 지금 에미 찾을 나이가?]
엄마의 시작된 잔소리를 재란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내고 있었다.
[니 할매만 아이믄 니가 잡혀가든 말든 안 온다]
[엄마는...딸네미 잡혀가는 게 좋수?]
[지발 좀 잡혀 가봐라. 아이믄 육지로 다시 가든가! 새파란 젊은 아가 이 촌구석에서 뭐하는 짓이고? 좁아터진 도서관에 쳐박혀 있으라고 대학 공부 시킨줄 아나?]
재란은 안다. 엄마의 심정.
상처를 안고 돌아온 딸이 안쓰러운 건 사실이지만 워낙 말 많은 동네라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이다.
왜 아직 이러고 있냐...영영 안 가건가... 그럼 차라리 적당한 남자 골라 결혼이나 시켜라...
엄마는 그런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다.
귀하게 키운 딸이 왜 남의 입방정에 오르내려야 한단 말인가...
재란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미안...걱정마라.나도 다 생각이 있다 아이가. 조금만...쪼끔만 더 지켜봐주라]
[그라믄 그런 죽을상하지 말고 얼굴 피고 댕겨라!]
[알았어...]
재란은 애교스레 베시시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등뒤에서 갑자기 채 영의 목소리가 들려 재란은 화들짝 놀랐다.
[응? 니 영이 아이가? 어디 가는 길이가?]
엄마의 안색이 환해졌다.
[아예...지금은 집에 가는 길입니다]
[그런나. 집에 놀러도 오고 그래라]
[예...그러겠습니다...참, 재란이 너, 진수가 찾든데?]
재란은 그 말이 거짓임을 눈치챘다.
[진수가? 야야, 그라믄 진수한테 가봐라. 내 먼저 갈란다]
기다렸다는 듯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엄마의 등에 대고 그가 인사를 했다.
[소문거리 만들고 싶지 않으면 날 따라와. 난 어찌되든 상광없지만...]
도망갈 궁리를 한다는 걸 알았는지 단호한 음성으로 그가 위협했다.
한숨을 내쉬며 재란은 그의 뒤를 따랐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진수의 집을 거쳐 그들은 중학교로 향했다.
*
[아이...우리 강새이 같은데, 어딜 가노?...옆에 저 사내는 또 누고? 가만...자는...영감님 집 막내놈...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는 찰나에 할매는 재란을 보았다.
할매는 그들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질때까지 지켜 보았다.
[아이, 우리 강새이 아즉 안 왔나?]
[아예, 같이 오다가 영일 만났는데, 가 말이 진수가 재란일 찾는다길래 진수집에 보냈심니더]
[...그랴?...]
할매는 고개를 갸웃뚱 했다. 분명히 진수는 아니었다.
...키가 큰 게 분명 막내놈인디...그 놈인가...!
*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조용한 밤하늘에 갑자기 울려대는 통에 지레 놀란 그녀가 얼른 받고 말았다.
-야, 어디고? 집에 가는 길이믄 희정이네로 와라. 오늘 희정이 생일 아이가-
[으응...알았어]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해야 하나...
기찬 방해꾼이라고 해야 하나...
[저...가봐야겠어요]
[또 피하는거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미안해요]
[이 재란!]
재란은 돌아섰다.
...미안해요...미안해요, 오빠. 하지만 지금은 오빠와 마주하고 얘기할 기분이 아니네요. 저한테 시간을 주세요. 저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거든요. 제가 왜이리 혼란스러워 해야하는지...그 여자처럼 당당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초라해요...
재란은 입술을 깨물며 삐쳐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
...사랑아, 도대체 니가 무엇이길래...사랑이 뭐길래...
자기 자신이 점점 더 싫어지고 있었다.
아직 아기가 없는 희정의 집은 신혼부부의 집답게 아기자기하고 따스했다.
곳곳에 붙어 있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재란아, 니 진수 어디 있는지 모르나? 야가 내내 연락이 안된다]
[그래? 집에는?]
[해봣지...야가 또 어디서 술판 벌이고 있는 거 아인가 싶다]
은숙은 머리를 저으며 혀를 찼다.
*
찾는 환자가 없자 은숙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그래도 급한 환자가 오면 다시 문을 열어야 하는 게 시골 보건소였다.
[야, 김 은숙!]
[에구, 깜작이야! 야! 니는 기척 좀 해라. 놀래 자빠지겠다]
진수가 뒤에 있었다.
어디서 밤샘을 했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니 내 좀 보자]
하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쭈...짜식이 똥폼 잡고 있네. 보자믄 못 볼줄 알고...]
[야, 니 간밤에 어디 있었노? 니 사고쳤제? 꼬라지가 말이 아이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 자리에 섰다.
[어제 희정이 생일이라 니한테 전화를 수백번도 더...!]
[사실이가?]
[뭐가? 앞뒤도 없이 뭐가 사실이고?]
[재란이 짝사랑한다는 사람이 우리 삼촌인 거...]
헉...!
은숙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너무 놀라 딸국질이 걸렸다.
[니...! 딸꾹. 니, 그, 딸국. 그거 우예 딸국. 알았노? 재란이 얘기 딸국. 했나?]
진수가 은숙의 등허리를 세게 몇 번 내리쳤다.
그 아픔에 놀라 딸국질이 다시 멎었다.
[우째 알았나카이!]
등의 아픔도 잊었다.
[너그 둘이 얘기 하는 거 우연히 들었다...사실이가?]
은숙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휴우...]
[사실이냐고 묻잖아!]
진수의 음성이 커졌다.
[알면서...뭐 하러 묻노. 그래 맞다. 재란이 사랑하는 사람, 니 삼촌, 채 영이다]
[젠장...!]
진수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자갈을 발로 마구 걷어찼다.
[가시나, 지금 속 끓이고 있을기다]
[아우 씨! 왜 하필 삼촌이고! 왜 하필!]
진수는 그녀에게 거절당했을 때보다 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