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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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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의 여자


BY 今風泉(隱秘) 2003-07-08

그런일이 있은 이틀뒤 빵집은 문을 닫고 그녀는 어디론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하늘도 땅도 모두 암흑이 되었다. 찾아보고 수소문 해보고 여기저기 헤메여 보았지만 아무도 그녀가 간데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이럴수가...
그녀는 어디로 누구에게로 간걸까?
얼핏 들려오는 소리는 검사의 아내가 되었다느니 빵집을 드나들던 신사와 눈이 맞아 시집을 갔다더라
소위 카더라 말고는 그녀를 찾을 길은 없었다.

살기 싫은 소녕의 세월을 보내면서 난 술을 탐닉하기 시작했고 타락의 늪을 헤메는 나날을 보냈다.
아무도 내가 왜 그러는지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세상에 늘 외로운 소주병만이 친구가 되 주었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이제 잃어버려야겠다며 술병을 팽개치던 어느 여름 7월 그맘때 난 고속도로 사고로  휠체어를 의지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다행히도 초등학교때 은사님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들어 간 것이 내게는 인생을 다시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떠한 생명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죽는다는건 있을 수 없음도 배웠다.

오늘 난 유라가 없는 공간에서 긴 추억 여행을 다녀 왔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내게 있는 유일한 추억의 향기를 맡으며 그 여자를 일생에 한번이라고 만날수 있도록 해 달라고 늘 기도하지 않았던가. 대다수의 남자는 첫사랑을 그리워 한다던데 나도...

목이 컬컬하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끊지 못한 담배다.
꽃나무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피워진 꽃술들이 향기를 피운다.
화원 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며 예쁜 꽃들을 쳐다본다.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연민으로 가득차 있다.

유라는 언제오나....
기다림에 담배연기를 내 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유라 누나 언제와요?"

간판집 아들놈이다.
4반세기 전쯤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으로 그녀를 따라 다니던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도 나처럼 유라를 연모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밤마다 그녀를 그리워하겠지. 눈뜨면 유라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이해가 간다는 웃음이요 그 시절의 추억을 씹은 달콤한 후식과도 같은 웃임인지도 몰랐다.

"야, 너 유라누나 좋아하지..?"
"네?..아저씨..."

그는 검연쩍게 웃었다. 그렇다는 말이겠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면 어쩌냐. 너만 손해지.."
"왜요?"

녀석이 나를 내려다 본다.

"유라 누나가 그렇게 좋으냐?"

녀석이 몸집답지 않게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그렇고 말고. 사춘기에 연상의 여인을 그리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라고...
가슴에 품고 홀로 그리워 애를 태우고 상상의 침실에 불러 들여 숨겨둔 사랑을 하지 않은 소년이 있을라고..

담배가 달다. 다시 한모금을 깊게 빨았다. 담배를 끊으라는 구역장님의 권유가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혼자서 있을 때 나를 달래주는 담배를 끊는건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불가능이다.

녀석이 화원속을 두리번 거린다. 유라가 올때를 기다리나 보다.

"이 나무는 얼마예요?"
"어떤거..아 그거 7만오천원.."

사지도 않을 녀석이 괜히 물어 보는걸 알지만 그라도 말벗이 되주니 심심치 않다.

"요즘 아버지 장사 잘되냐?"
"아뇨, 경기가 없어서 죽쑨대요"
"맞아 죽쑤지..그러면 네가 더 도와 드려야겠구나.."
"네~"

이 꽃 저 꽃을 살피던 그가 금고 앞으로 간다. 그리고 유라가 앉았던 의자에 주저 앉는다.
혹시 나쁜짓을 하려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새 그 생각이 잘못임을 알았다.

"아저씨, 이 사진 누구 사진이예요?"
"무슨 사진?"
"이거요.."
"이리 가져와봐"
"한사람은 유라누나고..."

녀석이 내 손에 사진을 한 장 쥐어 주었다. 나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속엔 세사람의 여자가 박혀 있었다. 어디서 본듯한 얼굴인데.....누굴까....
그래, 그 여자 같네.. 닮은 여자겠지..나는 뚫어지게 사진을 보았다.

"아저씨 왜그래요.."
"응, 아냐 그냥.."

사진속의 여자는 너무도 그 여자 빵집 여자와 너무 똑 같다. 좀 늙기는 했지만 그 여자의 모습이 분명하다. 내가 너무 집착해서인가.. 그녀에 대한 환상의 추억을 더듬은 탓인가..난 살을 꼬집었다. 아프다. 분명 꿈은 아닌데....그 뿐인가 옆에 앉은 여자는 어린 시절의 민아 얼굴이라고 봐도 좋은 것 같은 모습이다

"아니, 이럴수가...정말이라면..."
 
난 다시 눈을 감았다.
유라의 나이와 그 푸른 초원에서 그녀와 내가 하얗게 되었던 날과의 시간을 꼽아 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혹시..그러면..그렇다면..."

나는 머리를 저었다.
세상에는 닮은 사람도 많다지 않는가. 과대망상증에 걸려 사는 나의 인고의 세월탓이겠지...
나는 정신을 차리려 창박을 보았다. 사진 들린 손이 심하게 떨고 있었나보다

"사장님 왜그래요. 어디 아프세요?"

녀석이 놀란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사진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였는지 사진을 나꿔챈다. 나는 그 순간 미친 사람처럼 다리도 없는 몸을 일으켜 버등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안돼! 사진 이리줘!"

녀석이 내 행동에 너무 놀랐는지 동그란 눈을 뜨고 사진을 든체 문을 박차고 나가고 있었다.
사진을 찾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버드거리는 사이 내 몸이 휠체어 밖으로 쿵하고 나가 떨어졌다. 나는 엉겹결에 두손을 모았다. 그리고 절규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한번만 한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 끝=
졸작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 뵙겠네요. sokny@hanmail.net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