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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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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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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빨간머리앤 2003-03-24

내방에서 이것저것 서랍을 뒤적이면서 놀고 있는 조카를 보는 내 심사가 편하지가 않았었다.
난 그애 얼굴을 보기조차 싫었었다. 어린것이 제 녀석을 싫어하고 있다는 걸 내 얼굴표정과 내 몸에서 풍겨나오는 느낌만으로도 눈치를 챘는지 슬금슬금 눈치보는 모습조차 못 마땅하다.
큰언니의 아들은 이제 곧 돐이 다가오고 있었었다.
큰언닌 안방에서 엄마랑 잠시 사는 얘기를 주고 받는가 싶더니 고녀석을 데리고 휭하니 사라져 갔다. 큰언닌 결혼후 친정나들이도 자주 하지 않았었다.
큰언닌 예전처럼 동생들 앞에서 주눅이 잔뜩 들어있었었다.

큰언니의 행복해 보였던 신혼초기 모습은 몇달이 지나지 않아 빚좋은 개살구인 것을 엄마는 물론 우리 동생들까지 훤히 알게 되어버렸었다.
형부는 결혼후 우리 식구들에게 뭔가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실상 형부가 한 일이라곤 큰언니를 구슬리고 닥달해서 돈을 융통해오게 하는 일이 전부였었다.
처음부터 사업이랍시고 사무실이 어쩌구 저쩌구 떠벌린 것 또한 우리들 모르게 그저 친구편에 다른 전화번호를 하나 더 준비했던 것 뿐이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들은 무슨 사기꾼한테 뒤통수 얻어맞은 모양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었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큰언닐 데려와 어쩌자고 일이 이지경까지 오게 했냐하고 따지고 싶었었지만 큰언닌 큰언니데로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었다고 생각이 되었었다.
형부의 구질구질한 거짓말과 이번만은 이라며 가족들의 반대를 뚫고
결혼을 한 큰언니로서는 끝까지 감출수 있었으면 감추고 싶었을 만큼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또 한번의 절망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인연을 끊고 살지 않는 한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큰언니의 형편에 대해서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큰언닌 6개월도 되지 않아서 처음 살림을 살게 된 집보다 훨씬 낮은 조건의 집을 아니 방을 얻어서 이사를 하게 되었었다.
골목에서 문을 하나 열면 일종의 가게인지 부엌인지 모를 공간과 방하나가 있는 낮설기 그지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큰언닌 수선일을 보기 시작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식구 밥이라도 굶게 생겼으니 거기에다가 큰언닌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었었다.
훗날 어쩌자고 애까지 낳아서 일을 더 힘들게 하느냐는 소리를 엄마에게 듣기까지 했지만 큰언니로서는 애라도 생기면 형부가 정신을 차려서 큰언니와 애길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줄 알았었다.
큰언니에게 뱃속의 애기는 장미빛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희망 그 자체였었던 것이었다.

우리 큰언닌 정말 남편 복이 없는 여자였는지 모르겠다. 아니 남편복이 아니라 큰언닌 결혼할 팔자는 아니지 싶었었다.
형부는 하루종일 집에서 뭘 하는지 두손두발을 놀리기 일수였고 그러다 밤이 되면 예전의 제 버릇 못준다고 업소에 잠깐잠깐 나갔다 오는 모양이었나 보다. 그곳서 돈을 받고 일을 했었는지 어땠는진 알 수 없지만 큰언닌 수선일 마저도 신통치 않아 그만두고 애 낳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떻게 하루 세끼 밥은 챙겨먹기나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큰언니가 애를 낳았단 소릴 듣고 난 큰언닐 찾아가지 않았었다.
엄마는 큰언닐 찾아가 산후 뒷바라질 해 주고 싶으셨겠지만 그것도 형부란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큰언니의 성화로 얼마 안있어 집으로 돌아오셨었다.

백일이 되어 갈무렵 작은언니,동생과 함께 경북 외곽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큰언닌 그새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어정정한 곳에 또 새 둥질 틀고 있었었다.
아파트가 들어선 곳을 마주하고 있는 언니가 살고 있는 건물은 분명히 곡물 같은 걸 저장해 놓을성 싶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나마 그곳에 방이 두개 있고 또 한쪽 건물벽에 나뒹구는 소파가 하나 있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구나 여겨졌었다.
그곳서 형부는 쑥스러운 듯(양심은 있는지 그는 항상 우리 동생들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고갤 들지 못했었고 자리 또한 같이 하지 않으려 했었다) 옆방으로 옮겨가고 큰언닌 처음으로 우리들에게 형부의 흠이라면 흠일까한 말을 몇마디 했을 뿐 큰언니나 우리들이나 그냥 수박 겉?는 모양으로 있다가 버스 시간을 핑계로 얼마 안있다 일어난 것 같다.

그곳은 정말 휘잉하고 바람소리가 절로 날 것 같은 곳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