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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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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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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BY 액슬로즈 2003-05-01


따스함이 없다?....

진희는 자신과의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민성이 어머니와는 상통하는 점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진희씨 지금 비웃는거요?]

예리하게, 그리고 따지듯 민성이 물었다.
민성의 물음을 잠시 뒤로하고 진희는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따스하게...

[문득...이런 생각을 했어요. 민성씬 저보다 어쩌면 엄마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비꼬는 겁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어쩔거죠?...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에서 툭 걸렸다. 자만심과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의 신경을 건드려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싶었다.

[완벽해 보인다는 소리니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말을 돌려서 하지 마시오. 난 직설적인 사람이 좋습니다. 나와 결혼하려면 그 점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겁니다]

민성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남을 배려하기 앞서 자신의 기준에 먼저 맞춰 주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진희씨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데...단지 기분탓인가?...]

민성이 날카로은 눈빛으로 자신을 훑어 보자 진희는 언짢은 기색을 내보였다. 마치 의처증 걸린 남편이 아내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처럼... 과히 기분좋은 눈빛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은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편이었는데 오늘의 당신은...아주 안정된 느낌이오. 밝아 보이고...한 마디로 말해서 당당해 보인다고 해야하나?...요 며칠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있었죠. 아주 기분좋고 행복한 일이요]

진희는 빙긋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민성에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오?]

민성의 말에 진희의 웃음이 사그라들었다.그의 말투는 궁금해 한다기보다 당연히 알아야겠다는 듯 명령조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담스런 사람이다. 경인이 뭐라고 했더라?...
가슴속에 민성씨를 담을 자신이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진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점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진희는 민성을 그저 결혼할 사람으로만 보았지, 과연 어떤 인물인지, 과연 사랑할 가치가 있는지,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등등...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싫지 않고, 또 엄마가 원하니깐...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결혼하고픈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선애와 경인이 한 말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사랑...?
잊고 있었던 단어였다. 잊고 살았던 감정이었다.
사랑하면 진희는 친아버지가 먼저 생각났다. 어릴적의 기억이지만 항상 웃으며 자신을 안아주고 뽀뽀하던 아버지.
바깥일에 더 열심인 엄마보다 항상 옆에 있어 주었던 아버지가 더 좋았고 더 따랐던 진희.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란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모든일에 완벽을 원하는 엄마의 딱딱한 사랑과 마주해야 했던 현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희미해지고 사랑에 무감각해질 무렵, 경인을 만났고 다시금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을 겪기는 했으나 행복했었다.
그 행복이 다시 찾아왔다. 비록 이제는 경인을 동성의 사랑으로 보지는 않지만....

사랑이란 거, 행복이란 거...
진희는 그것을 민성과 함께 할 수 있을지...처음으로 의문을 가지며 자신없어 하는 자신을 보았다.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을텐데?]

[나를 사랑하나요?]

[뭐요?]






5.

[그때 그 사람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민성과 헤어지고 진희는 곧장 <마리아>로 향했다. 시간이 저녁 9시쯤 되었을때라 한 잔 술을 원하는 사람들로 까페는 꽉 찼다.

[그래서? 그래서 결혼 못하겠다고 말을 했니?]

선애의 물음에 진희는 고개를 저었다.

[왜?]

[나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은 몹시 당황하는 것 같았어. 어떤 답을 주어야 하나...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더라. 하지만 곧, 냉정한 얼굴로, 당신은 나를 사랑하오?...라고 묻지 않겠니?]

진희는 소리내어 웃었다. 깨긋하게 당한 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는 동안 민성은 내내 병원에 관한 얘기만 했고 진희는 건성으로 듣기만 했다. 그리고 약속이 있다며 먼저 일어선 진희는 차안에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결국 너희 두 사람 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거네? 김 민성씨는 병원이 목적이다 치고, 진희 넌? 넌 무었때문에 사랑도 없는 이 결혼을 감행하려는 건데?]

[나도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중이야]

[묻고 할 자시고도 없어! 더 미룰것도 없이 결혼 못하겠다고 해]

[우리 엄만, 날 끌고 서라도 식장에 가실걸?]

[이 결혼, 하고 싶어?]

경인이 조용히 물었다. 몹시 안타가운 눈빛을 하고선...

[다른 생각은 말고 너 자신에게 진지하게 한 번 물어봐. 일생에 한 번뿐인 일이야. 진희 니가 엄마 인생 살아줄 수 없듯, 엄마가 니 인생 살아주는 것도 아니잖아. 어머니께선 당장 충격은 받으시겠지. 하지만 평생 불행하게 사는 니 모습 보시는 것보다야 나아]

[맞아. 아무리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어. 니 엄마, 너라면 끔찍하잖아]

[그래...그런 엄마에게 난 여지껏 효도 한 번 못했어. 늘 빗나가는 짓만 했지. 울 엄마 민성씨를 후계자로 점찍고 계셔]

[엄마가 결혼하냐? 이 답답아!]

선애가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한 마디 했다.

[니들 사이에 열정 같은 것도 없지? 돌아서면 보고 싶은 것도 없고...서로 키스하고 싶다거나 함께 자고 싶다는 것도 없지? 남자는 사랑없이도 섹스가 가능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너! 사랑없는 섹스는 여자에게 있어 지옥 그 자체야. 너 사랑의 감정도 없이 섹스할 수 있냐? 최소한 경인이 경우처럼, 끌리는 느낌이라도 있어야 되지만 진희 넌 그런 것도 없잖아! 맞지?]

[넌 예를 들어도 꼭...!]

경인이 희미하게 얼굴을 붉히며 선애를 노려 보았고 진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뭐 틀린 말 했냐? 하여튼 진희 너, 김 민성씨랑 결혼하면 얼음궁전의 안주인이 되는데다, 아마 밤이 두려워질거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야. 사랑을 해봤고 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 해 본 선배가 하는 말이니깐 잘 새겨 들어. 니가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면 결혼식날 내가 식장 뒤집어 놓을 수도 있어]

[한 잔 해!]

답을 회피하며 진희는 잔을 들었다. 경인과 선애의 염려는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왜 모르겠는가! 답답한 건 진희 자신이었다.
민성의 분노는 어떻게 해 본다 치지만 과연! 엄마를 거스릴 수 있을지...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경인이 진희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채웠다.

[넌 니 어머니의 자식이야. 그리고 우리한테는 다시없는 소중한 친구고...니가 올바른 선택을 하리라 믿어]

경인은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건배를 했다.

[오랜만에 경인이 너 노래하는 거 보고 싶다. 니가 불러 주는
when i look into your eyes. 파이어하우스 노래. 불러 줄거지?]

[그래. 기꺼이...]

경인은 가벼이 일어나 무대로 걸어 갔다. 경인이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잡자 진희와 선애가 박수를 보냈다.


I SEE FOREVER WHEN I LOOK INTO YOUR EYES
YOURE ALL I EVER WANTED I
ALWAYS WANT YOU TO BE MINE
LETS MAKE A PROMISE TILL THE END OF TIME
WE'LL ALWAYS BE TOGETHER AND
OUR LOVE WILL NEVER DIE
................


허스키한 경인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경인에게 쏠렸다. 입가에 미소를 띈 채 경인은 친구, 진희와 선애를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다.

곡이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고 경인은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그리고 내려 오는 대신 경인은 마이크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솜씨지만 한 곡만 더 하겠습니다. 저의 소중한 친구가 예전 여고 시절때 불렀던 노래인데 한 번 들려 주고 싶어요]

경인은 무대 한 쪽에 놓여 있는 제리의 기타를 들었다. 경인이 간혹 밤늦게 까페에 남아 기타를 치곤 했다는 사실을 옆에 있던 선애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경인은 <찻잔>을 불렀다.

진희의 눈가가 살며시 젖어 들었다. 딱 한 번 불렀던 노래를 경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며 진희는 잔잔히 흐르는 그 음에 빠졌다.


경인을 보고 있는 또 한 사람.
부드럽고 사랑스런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 취한 남자.
재민은 안으로 들어 가지도 않은 채 출입구 한 쪽에 서서 경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볼때마다 그를 감탄하게 만드는 그녀.
재민은 까닭없이 숨이 찼다.


손님들의 신청곡을 정중히 거절하며 경인은 상기된 얼굴로 자리로 돌아 왔다. 진희와 선애가 박수를 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께 웃으며 자리에 앉으려던 경인은 문가에 서 있는 재민을 그제서야 발견하고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심장이 그녀의 의지완 상관없이 벌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