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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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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BY fragrance 2003-03-09

친정아버지를 땅에 묻고 난 그날 밤 아버지의 상반신만이 꿈 속에 보였는데 한 쪽 눈에서만 눈물이 흘러내리고 계셨었다.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이틀을 심한 몸살에 시달렸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처음 한 달간은 엄마가 죽지 않았는데 관에 넣은 꿈을 두서너번 꾸었다.
'엄마가 편히 있지 못하는 걸까?'
잊으려고 할수록 새록새록 엄마생각이 났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커다란 물줄기가 무서운 속도로 내리치닫는 것을 볼 때도 엘로우 스톤에 가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헐천이 터지는 것을 볼 때도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혼자서 차를 몰고 좀 장거리를 달리면 어느 순간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나한테 좀 잘하지? 무슨 원수졌다고 그렇게 욕하고 못마땅해 하고 그랬어. 엄마는. 정은이라도 잘 봐 주었으면 정은아빠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왜 그렇게 우리식구에게는 인색했냐 말야? 조금만 참았으면 우리 자리잡고 괜챦아지고 있는 중이니 미국구경이라도 시켜주었을 텐데..."
이른 새벽 잠이 깨어 아파트 앞에 펼쳐진 파란 잔디를 보며 나는 어느 새 내 눈에서 가는 눈물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내가 가끔 한국에 계신 이모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이모는 당부하신다.
"너는 엄마와 네 관계 생각해서 정은이하고 잘 지내고 좋은 관계 형성해라. 난 아들만 셋이지만 둘 장가 보내보니 제 가정 이루고 나면다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자식 하나라도 잘 길러서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좋은 모녀사이 되도록 좀 한가한 동안 노력해."
그런데 참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제 막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는 부쩍 말대답도 심해지고 짜증을 잘 낸다.
안 들리는 영어 들으며 미국학교 수업 듣는 것도 힘든데다 미국친구 사귀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때까지 가슴이 아프다며 나를 쫓아다니는 통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나는 성격이 그리 급한 편이 아닌데도 가끔가다 아이와 부딪혀서 소리를 질러대곤 하는데 성격급한 우리엄마는 내가 말대답할 때마다 얼마나 내가 고약스러워 보였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언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겠다.
6년간 직장생활을 쉬었으니 다시 일을 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아이는 날로 커가고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마흔에 접어들고 나니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다시 한 번 헤엄치고 싶다. 이른 아침 햇살에 비늘이 반짝거리는 은빛 병어처럼 작지만 날렵한 몸집으로 다시 한번 물 속을 헤엄치고 싶다. 나는 홀로 선 여자이기를 원하고 있었나 보다. 남편도 자식도 둘 다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내 삶의 전부일 수는 없기에 다시 한 번 꼬리 지느러미 힘차게 흔들며 물살을 가르고 싶어진다.


** 그 동안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이제 그만 물러갈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