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의 머리카락에 그렇게 신경 쓰세요? 그쪽도 과히 짧은 머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개인적으로 긴 머리를 좋아해요."
"왜 긴머리를 좋아 하시는데요?"
"보기가 좋잖아요."
"머리 긴 여자들이 남 보기 좋으라고 머리 기르는 줄 아세요? 그리고 그 긴머리 관리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아니,뭐 그게 그냥 제 취향이...."
"그래.그게 얼마나 이기주의적인 발상 이에요? 머리 짧은 여자 한테는 일단은 선입견 가질거 아녜요.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이유로 말에요."
".............."
놀란 눈으로 준희를 바라보는 경준의 다음 말을 듣지 않으려는 듯 ,
"지혜야,나 먼저 갈께.안녕히 가세요."
경준을 향해 까닥 목례를 한뒤에 준희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걸어오다 준희는 잠깐 후회를 했다.
'왜 내가 첨보는 남자 앞에서 모나게 굴지?'
후회스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경준은 스쿠터에 시동을 걸고 때마침 몰려온 써클 여자 친구들로 보이는 애들을 한가득 태우고 준희의 옆을 지나갔다.준희는 이름모를 불쾌감에 저도 모르게 멍하니 경준이 사라져간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혜가 걸어왔다.
"경준이 말이야,좀 특이한 애야.신학교 갈려다 여기로 왔대.그래서 그런지 좀 철학적인 면이 많아.나이가 두살 많은 것도 있지만 경준이가 하는 말 듣고 있으면 그속에 푹 빠진다......"
회상하듯 이야기 하며 지혜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듯 했지만 이름모를 불쾌한 감정에 흥분한 준희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채,
"하여튼 정말 별로야 나는.그사람 얘기 안 듣고 싶네."
"..그래,음료수나 마시러 가자.오후 강의 들어가기 전에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네."
휴게실로 온 준희와 지혜는 대충 먹은 점심을 보충이라도 하듯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다가 먹었다.준희는 휴게실에 설치되어 있는 오락실기계 앞으로 갔다.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머리 아플때,뭔가 생각할 일이 있을때 준희가 애용하는 게임이 있었다.
준희가 정신없이 '테트리스'게임에 빠져 있을때 누군가 준희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잘하긴 하는데 아직 나한테는 어렵겠는 걸."
"그럼 한 번 내기해 볼까?"
준희가 옆을 돌아다 보니 그 경준이라는 남자였다.순간 멈칫하며 게임 타이밍을 놓치는데 경준이 말했다.
"어,이것봐요.이러다 게임 끝나겠어.우리 다시 내기할까?"
"근데 너 왜 반말이니?"
경준과 준희는 좁은 의자에 둘이 앉아 어깨를 부딪히며 열심히 버튼을 눌렀다.준희를 보는 경준의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한채 준희는 내기에서 이길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오늘은 내가 졌군요.제가 저녁에 맥주 한잔 사도 될까요?"
"좋아요.술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내기에 이겨 기분이 좋아진 준희가 시원하게 말했다.
"준희야.수업시간 다 되가."
"응.가자."
일어서는 준희를 보며 경준이 급히 말했다.
"있다가 지혜랑 같이 우리 써클룸에 오세요.기다리고 있을께요."
강의실로 들어오며 준희에게 지혜가 물었다.
"너,정말 경준이 하고 만날꺼야?"
"뭐,내가 술 마다한 적 있니? 너도 같이 오랬잖아.그렇지 않아도 우리 오늘 우울한 청춘이었잖니?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재충전 하자구."
가볍게 말한 준희였지만 강의시간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어..기분이 왜 이래? 뭐야? 내가 경준과의 약속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거야?'
혼자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노트를 꺼적 거리던 준희의 펜이 어느새 노트를 '김경준'이라는 세글자로 꽉 채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