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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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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leaf 2002-10-24

다시 하혈이 시작되었다. 검은 찌꺼기가 섞인 선홍빛 출혈. 아랫도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 아랫배가 단단하게 뭉치면서 새벽3시에 벌어진 일이다. 열대야가 심했던 8월, 남편이 코를 골며 자던 밤이었다.
해질녘, 아이를 낳았다. 4개월 남짓 된 작은아이를 삼일간의 진통 끝에 세상에 토해 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도 세상에 나오기 싫어했던 아이. 그날 이후 분만실 유리창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던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뻐꾸기 벽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킨다. 남편이 좋아하는 매운탕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기다리는 이 시간이 내겐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다. 1시 35분을 조금 지났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배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했다. 남편의 하루 마지막은 샤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매운탕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라도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하는 사람. 남편은 매운탕 없인 식사를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다. 남편의 매운탕엔 마늘과 생강이 특별히 많이 들어간다. 비릿한 냄새와 양념냄새가 온 집안에 베여 있다. 남편의 매운탕엔 감히 내가 숟가락을 댈 수 없다. 메스껍다.
젖이 부풀어 올라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남편은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그는 단지 당신의 자식을 잃어버린데 대해 안타까워 할 뿐이다. 뜨거운 물수건을 가슴위에 올려놓고 찜질을 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어느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를 낳고 죄인처럼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나는 죄인처럼 여름을 나고 있었다.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던 시어머니는 매일 병실을 드나들며 위로와 서운함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연신 살폈다.
유난히 남편이 좋아하는 계절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남편은 여름을, 후텁지근한 여름을 좋아한다.
시어머니는 내가 퇴원을 하던 날 눈물을 흘리며 시골로 내려 가셨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남편은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내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신이 올라온다고 해서 낳아질게 없다고 남편은 말했다. 그리곤 어머니에게서 올라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듯한 표정을 남편에게서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에 병원으로 뛰어 들어오셨다.
남편은 어머니를 무척 싫어했다. 나는 남편의 어머니가 늘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