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요.애비무덤입니더. 잘보시소. 여기가 애비가 묻힌 애비 무덤이니더!”
그네는 속에 것을 다 게워내듯이 힘주어 말했다..
“야가 와이카노. 우리 팔수는 군에 안갔나. 전쟁이 나서 군에 안갔나.”
“아이구 엄마야, 그때가 언제적 얘긴데...”
시누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어무이요, 정신이 우째 그렇게도 없입니꺼. 어무이 큰아들이 죽었다 아입니꺼?”
“놔두소, 고마, 어무이 그러고 사는게 더 나을겝니더. 알면 뭐 할깁니꺼?"
시동생이 그네의 말을 가로 막았다.
“우리 큰아들은 군에 가서 아직도 안 돌아 왔다케도 그케샀네. 시끄럽게 떠들지들 마소, 고마.”
시어머니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양지 바른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물끄러미 삼오제를 지내는 그네들의 하는 양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무이요, 어무이는 참 좋겠심더. 좋겠심더...지도 그러고 살수만 있다면 살수도 있겠구만...
그네는 끝도없이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늪을 보았다.
어무이요. 지는 이제 고마 살랍니더.
지는 이제 고마 갈랍니더.
어무이는 우짤랍니꺼?
그 정신으로 누구한테가서 어찌 살랍니꺼?
어무이요. 지는요. 이래 살아도 얼마 못 살깁니더.
지는 알고 있심더,
제 속병이 그냥 약만 먹어 될 병이 아니라는 거 압니더.
지는 누구한테도 폐 끼치는 거 싫습니더.
지가 뭐 해준기라도 있어야지요.
삼오제를 마치고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데 멀리서 기적소리가 요란했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네가 다시 시어머니의 팔을 잡아끄는데 시동생이 다가왔다.
“형수요. 형님 병 수발 든다고 고생 많이 했심더 이제 다 고마 잊으쁘고 형수 몸이나 좀 챙기소. 정임이엄마도 형수 걱정 많이 합디뎌. 저하고 가든지 아니면 정임이 엄마하고 다녀오던지 병원 한번 같이 가서 검사한번 받아보소. 형수 늘 그 소화제 먹는거 지도 봤는데, 괜히 큰병 만들지 말고 그리 할소.”
“알겠구마. 지 병 지가 아니께 너무 그리들 걱정하지마쇼.”
시어머니는 기차 건널목 앞에서 다시 한번 움찔했다.
“왜그러는교”, 그네가 팔을 다시 잡아 끄는데 시어머니가 잠깐동안 그네를 쳐다본다.
그네는 그런 시어머니 눈에서 비치는 어떤 공포 같은 걸 보았다.
“어무이요. 왜그러는교.”
“야야, 기차온다, 지나가지마라 기차온다.”
“아이구 엄마! 애들처럼 그게 무섭나, 지금은 기차 안온다.고마...”
“너거들끼리 가라. 나는 기차 지나가고 갈끼다.”
“하이고...”
한바탕 소란이 일고 억지로 꺼집어 당기다 시피해서 그곳을 지나왔다.
시어머니가 지금까지 이 건널목을 지나다닌 횟수가 어디 손으로나 꼽을 수 있으랴.
수십년 동안 시어머니가 이 건널목을 지나다니며 논 밭을 오가지 않았던가.
그네는 시어머니의 손을 잡아본다.
갈고리 같은 앙상한 손이다.
따스한 온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기분마저 섬뜩한 손이었다.
그네는 그손을 꼭 잡고 놓질 않았다.
어무이요. 오늘은 일찍 푹 주무시소.
산에 갔다온다고 힘들었지예.
그네는 시어머니를 평소보다 더 따뜻하게 씻겨냈다.
이제 모두가 다떠나고 없는 텅빈 집이다.
그네는 평소처럼 저녁밥도 짓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며 대강 정리를 했다.
켜켜로 쌓여져 있는 먼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구만 저 놈의 내 헛껍데기는 어찌 할 수도 없고...
그네는 쓸데없이 많은 자신의 옷가지들을 죄다 꺼집어 내어 큰 보자기로 뭉쳐 사 놓고는 한쪽 구석에다 밀쳐 놓았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깨끗한 것으로 속옷부터 겉옷까지 다 갈아 입었다.
벗어 놓은 그네의 옷가지들을 속이 보이지 않게 꼭꼭 싸서는 그 큰 보자기 속으로 쑥 집어 넣었다.
시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으로가 다시 시어머니의 옷가지들을 죄다 같은 방법으로 여미어 꼭꼭 싸맸다.
새벽 네시, 그네는 거의 잠을 이루지 않았다.
다시 세수를 하고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는 시어머니를 깨웠다.
“와? ”
잔뜩 화난 목소리다.
“어무이요. 지하고 깔때가 있심더.”
“야가 이밤중에 어디간다고?”
“어무이 큰아들, 애비가 오라고 안캄니꺼?”
“가가 어디 있는데?”
“지 따라 올소. 지금 빨리 오라고 안 캄니꺼”
그네는 미리 준비해둔 스웨타를 시어머니에게 입히고 또 다시 작은 담요 하나로 둘러씌워서는 밖으로 나왔다.
그네의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희뿌연 새벽 달빛이 저만치 그들을 비추고 있지만 그네는 그것을 볼 정신이 없다.
“야야 천천히 가자 고마. 야야 천천히 가자 안카나”
시어머니를 둘러싸 안고 바삐 걸음을 떼 놓을 때 마다 연신 투덜거렸다.
한길을 무사히 벗어나고 이젠 마음을 놓을 만한 한적한 곳으로 다다랐을 때에야 그네는 자신이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제 정신이 난 사람처럼 곁에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달빛이지만 상기된 모습이었다.
아들 만나려 간다는 꿈에 그저 행복한 시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잠깐 망설여지던 마음을 다시 다 잡아 먹는다.
저 만치 기찻길이 보인다.
기차는 보이지 않고 늘 기적 소리만 요란하게 내던 그 굽어진 철로 위에 그들이 나란히 앉았다.
푸른 새벽이다.
이렇게 차가운 새벽공기 사이로 느껴져 오는 따스한 기운은 아마 눈물마저 마르게 하는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네는 시어머니의 손을 다시 꼭 거머 쥐고 힘주어 둘러안았다.
그 때였다.
빠아앙...............
기적 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크게 그네의 귀를 뚫고 있었다.
어무이요. 조금만 참으시소.
이제 강 하나만 건너면 애비 보러 갈깁니더.
이 강 하나만 건너면...
용서해 주이소. 용서해 주이소....
그네의 팔에 힘이 더욱 주어졌다.
****제 나름대로 단편소설이라는 힘든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글의 미숙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쓰고 싶어 쓰는 것 뿐이지 이건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오늘 밤에는 아무 생각없이 푹 좀 자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