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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


BY 그대향기 2025-03-07


엊그제 비가 왔다.
아니 진눈깨비가 왔다.
눈이 오나 싶어서 내다보면 비가 왔고 비가 오나 싶었더니 진눈깨비다.
도로는 온통 질척거렸고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다닌다.

비가 그치자 들에서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벌써 뭘 심는다고 바쁘게 움직인다.
얼음장 밑으로도 봄이 온다고 하더니 아무리 춥다 그래도 봄 기운은 막을 수 없나 보다.
주인이 바빠서 못 돌봐 준 마른 가지에도 작은 움이 트고 있다.
헐벗고 깡마른 가지에 새 생명들이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 여러 해 내 정원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나는 이 집에서 가장 바쁜 몸이 되었고
한 겨울 빼 놓고는 가지각색 꽃들이 피고지던 정원에는
잡초들만 제 세상을 만난 듯 우거지다 못해 울창하다.

몇 해 동안 꽃놀이를 원 없이 하고 살았다.
마당에 작은 연못도 파고 장미 아치도 몇 군데나 만들면서
명품 장미들을 사다 심고 화보에서나 봄직한 멋진 정원을 만들면서 신나게 꽃놀이를 했다.
얼굴에 생기는 기미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원에서 살았다.

명품가방이나 명품 옷들에는 큰  관심도 없다.
땅에다 심는 꽃씨나 예쁜 화분만 마당에 갖다 놓으면 기분이 좋았고
오며가며 물 주고 닦아주며 행복했다.
남편도 그러고 노는 아내를 응원해 주며 먼저 예쁜 화분을 사다 주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자주 아팠고 금전적인 손실도 우리가 예측할수 없는 한계점까지 가 버렸다.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접어야만 했다.

손 놓고 앉아서 남편의 수입에만 기대할 수 만은 없었다.
원망도 하지 않았다.
아픈 몸으로 어떡하든 회복해 보려고 동분서주 하는 남편을
최대한 좋은 말로 더 아프지만 말라고 다독이고 내가 더 뛰기로 했다.

그 와중에 다행히 아이들이 다 제 짝들을 찾아 시집 장가들을 잘 가 주었다.
며느리 될 아이와 사위 될 아이한테 현재 우리집 사정을 솔직하게 다 말을 했고
우리가 해 줄수 있는 최대치를 해 주는 선에서 모든 결혼준비를 마치는 걸로 했다.
양가 사돈분들께서 충분히  이해들을 해 주셨다.

행여 우리가 그 일로 마음 다칠세라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기까지 했다.
그러구러 큰 집안 행사는 무사히 잘 치루었고
본격적으로 나는 최일선에서 두 배로 뛰기로 했다.
과거 24년 연수원 주방장 경력으로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근무 조건도 좋았고 보수도 좋았다.
새벽 6시 출근 오후 2시 퇴근 한 타임, 오후 5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한 타임.
두 곳에서 받는 월급이 어지간한 중견회사 연봉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게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다른 건 할만하다.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남편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내가 도울 수 있어 다행이다.
남편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하는데 잘 하려다가 생긴 일인데 어쩌겠는가.....
더 나이들어 큰일을 당했더라면 아찔할텐데 그나마 노동력이 있을 때라 감사할 일이다.

당분간 내 정원은 황무지가 될 테지만
그래도 그 잡초더미 속에서도 강한 생명력들은 고운 자태를 뽐내며 봄을 열어주겠지.
날씨가 조금만 더 풀리면 낫을 들고 죽은 잡초들을 베어줘야겠다.
히아신스랑 수선화는 조만간 고개를 내어밀텐데 덜 미안하게 자리를 만들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