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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경자년)


BY 가을단풍 2020-07-13

내일은 내 회갑이다.
나의 회갑은 슬프다
정신없이 살던 인생을 되돌아 보게되는 계기가 되어 참 슬프다.
살아온 이런 것들이 다 무었인가?
보잘것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더구나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두달 조금 지났다.
아버지가 생전에 계셨더라면 내 회갑이 꽤나 푸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장례치르고 49제 지내면서 여러 형제들이 너무 번거롭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형제들끼리의 식사마져 사양했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코로나가 아니라
김일성이 처들어 왔어도 그냥 지나 가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밀착 관계였던 아버지가 떠나가신 자리 슬픈 추억만 남겨졌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울었다.

  슬픈 내 회갑을 위해 몇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내일 미역국을 끊여 먹을 생각이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은 회갑 잔치를 거나하게 치루셨다.
자손들이 모두 한복을 차려입고
일자 친척을 초대하여 펴놓고 자식 자랑을 하였다.
울 엄마의 회갑을 화려했다. 원새 때깔나는 미모였으며 정갈하고 부티가 자르르 흘렀다.
울엄마는 열심히 죽을 똥 살똥 일할때는 열심히 일해서, 자신을위해 쓸때는 아낌없이 쓸
줄 아는 분이었다.
우리 시엄니의 회갑은 눈물과 한숨이었다.
회갑잔칫날 "여자의 일생" 노래를 부르면서 철철 울었다.
그때는 그 눈물이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시아버지가 무척이나 잘 못 사셔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회갑이 되고 보니 시어머니의 눈물을 이해 할 것 같았다.
에이 ~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좀 더 위로해줄껄...
지나치게 흐느껴 우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래가 한스럽게만 느껴졌다.
친정엄마의 회갑이 화려했던 이유는 젊었던 시절에 호딘 시집살이를 잘 치른 댓가와
시집살이의 이를 문 한풀이를 농사일에 전염하여 자식 6남매를 가르치시는데 크게 공헌
을 하신 댓가를 아버지께서 높이 인정해 주셨다.

  나의 회갑은 참 슬프내.
아이들을 늦게 낳은 탓에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을뿐더러, 세자매가 얼마간 돈을 마련하여 내 손에 지어주는 것도 가슴이 저리고 슬펐다. 에구 ~ 힘들게 용돈 아껴 쓰면서....
자린고비 내 서방은 코딱지 만큼 작은 이벤트를 해주었다.
  친정 부모님 병수발을 8년 넘게 했다. 교통사고 나서 전신마비된 아버지 병원수발하고
그속에서 어머니 지병돚어 돌아가시고, 홀로된 아버지 돌보는 중에 전립선 암이 발병하고
투병하다 돌아가시고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세딸을 열심히 길렀으며 시집 치닥거리도 할만큼 했다.
그런데 공이 없다.
내가 시부모님 케어를 8년 10년 했다면"고생했다 고생했다." 입에 침이 마르련만
일절 말이 없다.
남편의 회갑때는 자기 부모 형제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사람하고 결혼해서 애들도 잘 기르고 단캄 셋방에서 집도사고 살림도 일구고.."
 그러나 정작 내 회갑에는 아무런 공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도 생전에 계신 시부모님에 대한 감정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슬프내.
회갑 참 슬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