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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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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BY 그대향기 2020-02-08



2020 새해가 밝았다며 이런저런 다짐들을 했었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원대하지도 않았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돈 많은 큰부자도 아니었고, 높은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남편이 삼시세끼 밥 잘 먹고 화장실에만 잘 가게 해 달라고 빌었다.

위장과 대장을 잘라내고 9개월
그 지독한 장루와의 싸움을 끝내고 드디어 장루를 없애고
암세포를 도려 낸 끊어져 있던 위장과 대장을 잇는 복원수술을 했다.
장루는 인공항문이다.
대장을 잘라냈기 때문에 아물 동안 임시로 대변을 받아내는 곳이다.
말이 인공항문이지 환자본인은 자존감이 많이 꺽이는 일이다.

혹시라도 터질까봐 걱정
곁에 있는 사람한테 냄새날까봐도 걱정
건강한 사람처럼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물만 쪼르륵 내리는게 아니라 자신의 대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처러해야하는
그 난감하고 지독한 현실 앞에 남편은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수술하고 회복되어간다는 그 희망 하나만을 믿고 벼텨 온 지난 9개월이었다.

드디어 장루를 떼고 정상적으로 소화기관을 거치고
항문을 통해서 대변을 보게 하는 수술을 했다.
장루를 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홀가분했고 날아갈 듯 남편은 편안해 보였다.
냄새나는 장루주머니(쉽게 말하면 똥주머니)를 옆구리에 안 달고 다녀도 되니까
자존감도 아울러 자동으로 올라갔다.
9개월동안 장루 주머니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그 일대는 피부가 다 헐고 탈장까지 여러번 왔었다.

아무한테도 말 못하는 아픔과 고통에 남편은 힘들어했다.
아내인 내가 도울 일은 없었다.
그저 장루를 갈고 치울 때 약간의 도움만 줄 뿐 대신 장루를 차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피부가 쓰라리고 진물이 나면 연고를 발라주고
파우더를 뿌려 주는 정도의 도움만 줄 수 있었다. 
위와 대장의 수술 자리가 잘 아물고 복원수술을 해야해서
상처가 잘 아물고 있는지 수시로 대학병원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확인 해야했다.

다행히 남편은 상처가 잘 아물었고  예정대로 복원 수술을 했다.
중간에 1차 암수술 상처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극심한 통증과 불안감으로
한 밤중에 창녕에서 부산까지 응급실을 두어번 달려 갔지만 잘 넘어가줬다.
순간순간 불안했던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큰수술을 두군데나 했으니 오죽했으랴....
자주 크게 아프기도 하지만 상처치유능력 또한 뛰어난 남편이다 싶었다.
사람 놀래키는 재주도 많지만 회복력도 빠르다.

복원 수술 후 두달
또 다른 복병이 남편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항문을 통해서 대변을 보는데 그 횟수가 하루에 수십번이니..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다.
본인의 의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변의를 느낄 사이도 없다.

소화기능도 떨어져 있는데다가 항문이 거의 1년 동안 쉬다가 가동을 하니
괄약근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낸다.
성인용기저귀를 박스때기로 사 들였다.
그래도 화장지며 옷들도 수도 없이 적셔대니 남편은 자존심이며 자존감도 엉망진창.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나한테도 본인의 민낯을 보이지 않으려한다.

우리부부는 한 번지 안 두 지붕에 살고 있다.
안채와 별채
안채는 내가 살고 별채에는 남편 혼자 서재와 침실을 꾸며 산다.
몇 년 전에 우리 땅이 하천공사에 100평쯤 들어가면서 보상을 받았고
그 보상금에 우리 돈을 조금 더 보태서 별채를 17평 쯤 조그맣에 만들었다.
조립식주택에 서까래를 넣고 뾰족지붕으로 편백마감을 하니
제법 그럴듯한 서재와 욕실을 갖춘 침실이 되었다.

지금 남편은 그 별채에서 혼자 그 모든 일을 감당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야하는데
같은 화장실과 같은 침실을 썼더라면
둘이 다 힘들었을거라며 남편은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밤낮이 따로 없는 배변시간.
어떤 날은 밤을 하얗게 쌘 적도 많았단다.

남편은 외출 할 일이 있어도 나더러 별채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다.
자기딴에는 한다고 해도 미쳐 처리 못한 일들을 아내한테 들키는게 자존심 상하는 모양이다.
대답은  알았다고  해 놓고 남편이 나가고 없는 별채에  넘어가
남편이 오기 전에  뒷정리를 몰래 하고 나온 적이 여러번.
나중에 별채에 가 본 남편은 들어오지 말랬더니 왜 왔어?
말은 그렇게 해도 고마움이 묻어나오는 인사다.

속옷빨래며  휴지통을 비워 놓고 나오는데 눈물이 핑~돌았다.
혼자서 얼마나  힘든 밤을 보냈는지 한 눈에 다 보였다.
그래도 아내한테 그런 모습을 안 보여줘서  너무 다행이라는 사람이다.
별채짓기를 정말 잘했다며 웃는다.
그 때 별채를 안 지었더라면 안 아팠을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별채는 남편의 작은천국이었는데 지금은  회복실이 되어있다.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봐도 되는 남편만의  휴식공간이며 회복실이다.

대장과 항문이 제 기능을 다 회복 할 때까지 짧게는 일년 길게는 몇년
마음 푸근하게 먹고 인내하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수술을 한 사람들이 다 겪는 일이라니 참담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의사도 명약도 따로  없다
시간이 약이다.
기다리고 순응하는 일 밖에는.

오늘은 정월 대보름 날 밤이다.
날이 맑아서 두둥실 커다란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에 훤하게 떠 있다.
컴퓨터를 두드리는 복층 내 창가에도 밝은 달빛을 마구마구 쏟아붓는다.
다른건 아무 것도 소원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대로만 지나가게 해 주십사.....
건강을 잘 회복해서 남은 날 동안 안 아프게만 해 주시기를....
더는 아프지말기를.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었음을 추억하게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