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짧은 소설을 읽다보면
40대의 여고동창생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모임에 늦게 도착한 친구의 첫마디가 "나 오늘 예쁘다는 말 들었어."였다.
늦어서 미안해. 가 아니라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라는 것에 촛점을 둔다.
그러면서 언제 예쁘다는 말을 들었냐며 서로가 최근에 겪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는데
문득 나는 언제 예쁘다.라는 말을 들었을까?라는 생각에 웃어본다.
지난 토요일에는 모임의 친구가 오이지를 담궜다며 모임의 사람들에게 각각 6개로 포장된 오이지 한다발을 안기며
맛있게 먹으라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아삭한 오이지를 물에 살짝 담그었다가 고추 송송, 파 송송 썰어 얼음물에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오이지냉국을
만들어 먹었는데 어찌나 상큼하고 깔끔한지 그 친구 모습이 다시한번 떠 올랐다.
참 예쁜 모습이....
어제 집을 나서려다가 너무 더워 보냉병에 아이스커피를 한 잔 타면서
문득 경비아저씨가 매 번 주차장 입구에서 땀을 식히고 계시는 모습이 생각나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더 타서
갖다 드렸는데 어제는 아저씨가 경비실에 계셨다.
문을 두드리고 아이스커피를 드리니 벌떡 일어나셔서 고맙다고 받으셨는데
뒤돌아서서 보니 경비실에 에어콘이 켜져 있었는지 공기의 느낌이 시원했다.
오늘 마트에서, 계산하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장애인 전동차를 타신 할머니께서 계산을 하시면서 캐시어에게 물건을 전동차 뒷주머니에 담아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웃는 얼굴로 물건을 담아 주는 캐시어의 얼굴을 보며 나도 덩달아 물건을 건네주니 캐시어가 고맙단다.
바쁘고 힘들텐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건 담아주는 캐시어 얼굴이 예뻐보였다.
짧은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고동창생들이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택시기사한테 거스름돈을 안 받았을 때,
도배하러 왔던 도배장이 부부에게 홍삼차를 한 잔씩 드렸을 때,
먼 옛날로 돌아가 오빠 친구를 만났을 때, 초등학교 남자 짝으로 부터,
엿장수 아저씨로 부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먼 옛날의 예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친구들과 어울려 친구네 집에 가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고만고마한 친구들이 갑자기 예쁜이 선발대회를 한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진'으로 뽑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생각이 된다.
물론 그 뒤로 '진'이란 타이틀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주어진 적은 없었고
이젠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에서 잡티와 주름이 선명해 보이지만,
그시절의 그 친구들도 생각이 나고 에쁘다.라는 말이 우리 여자들에겐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웃음을 선사하는 말이다 싶다.
지금은 예쁘다.라는 말이 우리가 기분좋은 행동을 했을 때 사용하는 단어로 대신할 수 있겠지만
주위사람에게 좀더 많이 사용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고 더 많은 엔돌핀이 분비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진짜로 예뻐지면 더욱 좋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