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남편이 일반 기업에서 메이커 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후
우리에게 의료보험증과 보너스라는 생소한 복지가 생겼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2달에 한번 씩 나오는 보너스가 있다는 것은
무너지는 가계부를 지탱하는 힘이 되리라 믿었다.
약속대로 첫 보너스가 나왔다.
이걸 어떻게 쓸것인가 고민하다 전화를 놓자고 합의했다.
시댁과 친정에 우리가 사는 것을 궁금하지 않게 전해드리자는 의미였으나
실은 나는 문명의 이기를 살림으로 들여놓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우리집에 생긴 전화는 74-0000. 번호를 달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시댁으로 친정으로 전화를 드렸다.
그때까지도 시골동네인 시댁은 공동전화를 쓰고 있었다.
114에 전화를 걸어 00도 00군00읍00리 를 대달라고 하면
전화가 있는 아저씨댁에 연결이 된다.
그러면 대전에 사는 누구씨 아들집인데 부모님을 바꿔달라고 하면
스피커 소리가 들렸다.
000씨 대전에 사는 며느리에게 전화왔습니다..어서 오셔서 전화받으세요하면
숨이 턱에 닫게 달려오시는 아버님 소리가 들렸다.
몇마디 안부를 물으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다 잘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뚝 끊으셨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참 허허로웠다.
전화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남편이 밖에서 가끔 전화를 해주면 참 좋았다.
전화가 없을때면 퇴근때나 되어서야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혹시 남편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공중전화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전화 때문에 남편과 다투게 되는 적도 있었다.
남편이 회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 저녁을 해놓고 기다려도 오지 않고 전화도 없을 때였다.
남편이 전화를 못한 이유는 대략 이랬다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가 가까이 없고...공중전화가 있으면 동전이 없어서 였다.
그렇게 전화는 우리의 일부가 되어 특별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백색 전화기에서 흑색전화기로 그리고 다양한 컬러와 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전화수요가 많아져서 인지 우리집 전화번호는 74국에서 634국으로 변해 30여년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러며 휴대전화가 나오기 시작했고
집전화는 어느땐 전화번호까지 생각나기 않게 쓸모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들 며느리 하다못해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까지 휴대전화가 있으니
집 전화를 사용하는 횟수가 없어지게 되었다.
또 얼마 전 부터는 집 전화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아들 이름을 대면서 아들이 다쳤다느니 병원에 갔다느니 하는 전화를 서너번 받으니
집 전화가 두려워졌다.
너무도 오래 노출된 집 전화번호를 원치않은 사람들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 부담 스러웠다.
그래서 전화코드를 빼놓고 두달 쯤 지내다가
전화를 해지하기로 했다.
남편이 100번으로 전화를 하니 주민등록증을 복사해서 주빈번호 뒷자리를 지운 뒤
팩스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당장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우리집 버튼을 눌렀다.
어느 여성이 나와 친절하게 들려준 목소리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다시 확인 하시고 걸어주세요..
35년 우리와 함께 했던 우리집 전화번호는 이렇게 우리집 역사속으로 살아지고 말았다.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가 된 우리집 전화번호...
그리고 아직도 내 휴대전화속에 저장된 엄마 아버지 휴대전화번호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다시 확인 하시고 걸어주세요..
가 되고 말았다.
우리집 전화로 참 많은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ARS로 들은 아이들 대학 입학 소식도 있었고
군대가서 가슴 설레게 하던 아들의 전화도 있었다.
가을속에서 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