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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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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인생 4.(고자)


BY 편지 2015-08-09

이 사실을 어디서부터 쓰고 어떻게 써야 할까? 쓰지 말까? 너무 내 자신을 까발리는 건 아닌가?

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라고 흉보고 나중엔 날 무시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나는 글로 속을 풀어내고 싶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 꿈이 있기도 하고,

겉모습만 보여주는 글이란 얄팍할 것이고, 미사어구만 늘어놓으면 재미도 흥미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까지 들어내 글을 쓰면 자존심은 상하고 거칠게 보일지는 몰라도

속 마음은 누구나 살인도 저지르고, 음탕하기도 하고, 욕도 한다.

모순투성이인 인간의 본성과 속과 겉이 다른 양면성은 얼마든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남편은 보통남자처럼 여자를 좋아한다. 유별나게 성을 밝히는 남자는 아니지만

보통남자처럼 젊을 땐 그 나이게 맞게 할 줄 아는 그런 남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은 부부관계를 잘 하지 못했다.

처녀였던 나는 이런 건가? 그런 건가? 했고,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했다.

도박이나 술로 자신의 인생과 내 인생을 파먹는 쌀벌레 같은 인간이라 불안한 상태였고,

밖에서 딴짓을 하다 왔으니 피곤해서 등을 돌려 자버릴 수 밖에 없겠구나 했었다.

그러나 그게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고,

한편으론 내 남편 같은 남자도 있을 거라 스스로 위안을 했다.

 

나는 언니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이모 둘이 내 언니나 마찬가지였다.

결혼한지 일년쯤 돼서 처음으로 이모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모? 일이주에 한번 정도 하는데, 그냥 올라왔다가 자기 볼일만 보고 내려오는데정상이야?”

? 고자 아니야? 도박에 술에 그거까지, 기가 막혀서!”

그 당시 남편은 내게 이렇다 할 변명도 설명도 없이 그쪽 관련 병원엔 다니던 때였다.

28살먹은 남자가 그게 잘 안돼서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약을 받아다가 먹었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렇대.” 이 말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맨날 내 속을 뒤집어 놓기 바쁜 사람인데, 하고 싶지도 않은데 뭐.

내가 짐작하기로는 총각 때 유흥업소 여자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병이 난 것 같았다.

총각 때도 병원에 들락거렸고 결혼 후에도 들락거렸지만 이미 고질병이 되어있었다.

저런 인간은 스스로 결혼을 포기했어야지 나는 뭔 죄인가.

 

남편은 지방출장이 잦아서 주말에만 한 이불 속에서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애기를 재우고 오고나 샤워를 하고 오면

남편은 코를 들입다 골며 자고 있을 때가 훨씬 많았다.

남편은 잠이 많아서 한번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잠충이었다.

그렇게 주말이 가면 주중엔 지방출장을 가서 만나지 못했고,

한 달에 한두 번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나마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바로 왼쪽으로 내려올 만큼 힘이 없었다.

이모가 웃으라고 내게 말해준 것이 자기 혼자만 볼일을 보는 남자를

오른쪽으로 올라가 왼쪽으로 내려온다는 표현을 썼다.

내게 위로가 되라고 이모는 이모부 쪽 고모부에 대한 얘기도 해 주었다.

첫날밤이왔대. 근데 고모부 거시기가 초등학생 고추만하드랜다.

입구 쪽에서 깔짝깔짝 거리다가 볼일만 보고 내려오더랜다.”

이모랑 나는 방바닥을 쳐가며 웃었다.

근데 웃다가도 한쪽 가슴에선 주먹만한 바람이 훵하니 지나갔다.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하루 종일 우울해 밥맛이 없고 잠을 자지 못했다.

살고 싶은 마음은커녕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어지러워 대중교통을 다섯 정거장 이상은 타지 못했고,

밤이면 숨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지만 병명은 나오지 않아

담당의사는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백 가지도 넘는 설문지를 작성했더니

우울증이 너무 심하다고 입원을 하라고 했지만 애기 봐 줄 사람이 없어 통원치료를 했다.

남편 없는 밤, 주말엔 잠만 자는 남편, 날이면 날마다 도박이나 술 생각뿐인 남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사는 재미가 없었다.

 

이모가 엄마에게 말했다. 내 남편이 밤일을 못한다고.

엄마가 작은 엄마에게 말하고 작은엄마가 작은아버지에게 일러버렸다.

그 새끼 고자잖아! 이혼해!”

작은 아버진 내 남편이 도박을 해 빚만 갚느라 정신이 없어도,

술을 좋아해 해롱거려도 이혼하라고 하지 않고 조금만 참아보라고 했었는데,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얘기를 듣더니 바로 이혼하라고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이라고.

 

세월이 조금 더 흘렀다. 아카시아 꽃 난 분분 날리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 신도시로 분양을 받아 입주를 했다. 꽤 넓은 아파트를 시집에서 사줬다.

남편이 제일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할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나도 우울증에서 스스로 벗어나려 노력한 끝에 다행이 별탈 없이 살아낼 수 있었다.

피임은 하지 않았다. 한두 달에 한번뿐인 잠자리라 할 필요가 없었다.

첫 애를 낳고 칠 년 만에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난 참 임신도 잘 되는 체질인가보다.

옛날 같았다면, 남편이 제 구실을 했었다면

애를 낳고 일이 년이 지나면 다시 배가 불러올 다산의 능력을 가진 여자였다.

애기도 제왕절개 없이 몇 시간 만에 쑹덩쑹덩 가래떡처럼 잘도 뽑아냈다.

두 번 다시 이 인간의 자식은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생긴 애기라 없앨 수가 없었다.

집도 생기고 남편이나 나나 살려고 노력하던 중이라서 둘째를 낳았다.

 

허물없이 지내는 이모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말했다.

플래시 맨 이라고 알아?”

그게 뭔데?”

우리 동네에 플래시 맨 이라고 있는데, 밤마다 여자 거시기를 플래시로 비춰본대.”

이모 둘과 나는 뒤로 넘어가며 웃고 또 웃었다.

초콜릿 맨 이라고 들어봤어?”

아니?”

여자가 지쳐 쓰러지려고 하면 초콜릿을 먹어가며 밤새 한대.”

와하하하하, 옴마야 배아퍼~~나 죽겠네.”

나는 이모들을 때려가며 방바닥을 쳐가며 웃었다.

남편은 갈수록 횟수가 줄어들고 시간은 여전히 몇 십 초만 하는 몇 초 맨 이었다.

플래시 맨은 징그럽고, 초콜릿 맨은 내가 감당할 수가 없지만

몇 초 맨은 기분만 잡치고 슬픔만 늘어나고 허전함만 남게 된다.

 

남편과 난 어느 순간 각방을 쓰게 되었다.

한두 달에 한번 치르는 행사 조차도 나는 거부하게 되었다.

남편은 주말이면 비디오를 몇 편씩 빌려 거실에서 밤이 새도록 봤고

나는 책을 몇 권씩 들고 안방에서 밤늦도록 책에 빠져 살았다.

남편은 거실에서 자고 나는 안방에서 자다가 아침을 맞고, 사계절이 피었다가 지고,

세월이 구름 따라 흐르고 흐르고 흘러

우리는 한 지붕 밑에 두 집이 사는 별거 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