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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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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반(똥 싼 바지)


BY 편지 2015-07-01

오후 다섯 시 반(똥 싼 바지)

젊은이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뚱뚱한 몸으로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말없이 집으로 간다.

조용한 면에서 나는 이 젊은이가 싫다고 할 순 없었다.

이곳은 사연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얼굴에다 있는 힘껏 붙이고,

여 보란 듯이 당차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연 별로 없는듯한 얼굴로 가만히 들어오는 젊은이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다만 젊은이가 십 분만 앉아 있으면 냄새가 창문으로 미쳐 빠져나가기 전에

우리가 앉아 일하는 곳으로 스멸스멸 걸어서 콧등을 찡하게 친다. 항상 그게 문제였다.

오랫동안 안 씻은 냄새와 한창 식욕과 뭔 욕이 왕성한 때라서 그런가

젓갈을 오래 삭힌 것과 여름날 관광지에 있는 간이 화장실을 합한듯한

몸 속 바닥부터 올라오는 강력한 냄새는 으아~~ 심각하고 심오한 수준이었다.  

 

오늘은 그 냄새가 더 강렬하게 유혹적이었다.

그 유혹에 이끌려 안 그런 척 젊은이에게로 시찰 겸 조사할 겸 다가갔는데

이게 웬일 이라냐?! 앞 거시기 쪽에 녹두빈대떡처럼 누런 게 비치는 게 아닌가?

분명 똥 색이랑 똑같은데? 우웩! 똥싼 바지를 그대로 입고 앉아 있었던 것이어뜨아~~!? 것이었다.

것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안그런척 태연하게.

난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남자직원을 불렀다.

남자 직원 두 분이 젊은이를 일어나게 해서 밖으로 잘 안내를 하는데,

또 하나의 빈대떡을 엉덩이에 떡하니 붙인 채 젊은이는 어그적어그적 걸어나갔다.

냉방 때문에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메르스를 위해 비치해 두고 있던 소독제를 소파에 뿌리고, 방향제를 뿌리고,

휴지로 걸레질을 하고 또 했다.

오후 다섯 시 반(똥 싼 바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가난한자나 부자나, 범죄자나 장애인이나, 아무나 걸러지지 않고,

신분 확인도 없이 들락 날락 하는 곳이다.

사연을 얼굴 가득 싣고 오시는 분, 기쁨으로 온 사방을 환하게 하시는 분,

술 취하신 놈, 거렁뱅이 사람, 살짝 미친 여자, 많이 이상한 아저씨, 너무 화나신 분,

똥꼬 다 보이는 치마를 입고 오는 샥시.(색시)

여자 만나고 싶어 오는 남자. 쌈닭 할아버지, 먹보 할머니.

대한민국 사람들 다 올 수 있는 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지만

똥싼 바지를 깔고 앉아 있는 젊은이는 처음 접하는 황당하고 낯선 존재였다.

 

난 똥 냄새 없앨라 퇴근 준비하랴 바빠서 뒷일이 어떻게 됐는지 퇴근하면서 물어봤더니

할아버지가 헐레벌떡 와서 젊은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부모님이 저런 아들을 두고 얼마나 가슴 아프고 속상해하고 고단했을까를 생각하며

초록 잎 무성한 목련나무를 지나, 철 계단을 타당탕탕탕 내려와

메마른 화단에 정성껏 키운 접시꽃과 백일홍 꽃을 보며 놀랜 마음을 달래보았다.

힘들다기보다는 나도 젊은이의 부모도 깜짝 놀랜 하루였고,

정신이 모자란 젊은이만 화단의 꽃처럼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있던 저녁무렵이었다.

 오후 다섯 시 반(똥 싼 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