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마트에 갔을 때다.
긴가민가?
닮은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낯설다.
남편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긴가민가 했던 얼굴이 나도 아는 사람이다.
세상에나...
몇달만에 사람얼굴이 영 아니다.
올 초에 세가지 암을 수술했단다.
위는 다 절개하고 없고 췌장도 간도 다 수술했단다.
해골같은 얼굴이 못 알아보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했다.
돌아서 마트를 나오면서 남편이 그런다.
우리 너무 아등바등 살지말자.
저 분 봐.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밤낮없이 열심으로 뛰더니 하루 아침에 저렇게 됐잖아.
우리 물 흐르듯이 그렇게 순하게 살자.
한 순간에 우리도 저렇게 될지 누가 알아?
뭘 얼마나 더 잘먹고 잘 살겠다고 바쁘게 살아?
그저 남들 세끼 밥 먹을 때 우리도 세끼 먹으면 족하자.
밥 잘 먹고 잘 싸고 숨 잘 쉬면 그걸로 만족하며 살잔다.
맞는 것도 같다.
잘 못 먹고 잘 못 싸고 숨을 잘 못쉬니 큰 병이 난다.
큰 욕심 부리지 말잔다.
그런데 그게 안 쉽다.
큰애는 시집을 갔다지만 둘째는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서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고 외국에 나가있다.
4년만, 딱 4년만 더 공부해 보겠단다.
아들은 내년 한해만 더 뒷바라지 해 주면 되지만
둘째는 새로운 4년이다.
공부까지는 부모몫이라 생각한다.
살아갈 기술은 익혀줘야 부모노릇을 하는 것 같기에 그러마고 했다.
그 다음은 오로지 우리 노후만 생각하기로 했다.
애들 공부까지만 봐 주고 그 나머지는 자기네들 알아서 시집장가 가라고 할거다.
어른들이 그러셨다.
부모는 남의 집에 돈을 꾸러 가더라도 자식들 공부시킬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그럼 둘째는 우리의 행복을 4년 더 연장시켜준 효녀???ㅋㅋㅋ
이제는 힘든 일이 싫다.
은근히 두렵기도 하다.
여기저기 아우성을 치는 내 몸 구석구석이 불쌍하다.
딱 4년만 더 연장하기로 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 특별함이란 여기보다 근무조건이 더 좋을 경우.
체력의 한계가 느껴질 때는 새 날이 밝아오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지난 주 쉬는 날에는 산에 올랐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기자기한 꽃밭에 잡초도 뽑고 작은 계곡도 손 보고.
새벽에 일어나 오로지 내 좋는 일만 했다.
하로 온 종일 행복에 젖어 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그날 언젠가는 이렇게 하루 온 종일
내 좋아하는 일만 하는 날도 오리라.
크고 작은 꽃들이 방실 벙긋 웃어주는 내 꽃밭에서
소곤소곤 재잘거리며 딱다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도 들으며.
4년 뒤 모든 일에서 놓임을 받으리라
둘째의 발돋움은 본인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동아시아 끝 그 어느 나라에 가 있는 둘째
혼자서도 모든 일을 척척 잘 알아서 하는 기특한 딸이다.
4년 뒤 뜻한 바 꿈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
남편도 기꺼이 뒷바라지 해 주마 약속한 일이다.
빈말이라도 행복한 것은 우리의 노후는 자기가 책임진다나?
아서라마서라 우리는 그 누구와도 함께 안한다.
오로지 지지고 볶아도 여보당신 둘이서만 살거다.
부모에게 효도 하고 싶거들랑 용돈은 다달이 일정액 주렴.ㅋㅋㅋ
나이들어도 품위유지비는 꼭 있어야겠더라.
가끔 밥하기 싫은 날은 아빠랑 둘이서 맛난 외식도 할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