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빵을 좋아했다. 엄마도 내 키의 팔 할은 빵이 키웠다고 말했다.
가난했지만 엄마는 빵 사먹을 돈은 항상 주셨다. 제일 좋아했던 빵은 ‘노을’이라는 빵이었다.
둥근 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이었고 위에 달콤하고 오돌톨한 고물이 뿌려진.
안은 촉촉하면서 쫄깃했고 솔솔 뿌려진 빵 가루가 달았다.
‘노을’이란 이름 또한 낭만적이지 않나.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성처럼 서 있던 언덕학교였다.
그래서 계단이 많았다. 운동장이나 화장실을 갈 때도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학생들은 굵고 알이 생긴 다리의 원인은 계단이라고 말없는 계단을 미워했다.
언덕학교에 노을이 지면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
교실 창에 노을이 뿌려지면 아래로 보이던 부잣집동네가 더 고급스러워지고 예뻤다.
위쪽과 저기 저 아래쪽이 다른 세상이라 여겼다.
빈부의 차이를 잊게 하던 것은 오로지 빵을 손에 주고 야금야금 아껴먹던 순간이었다.
‘노을’빵은 내 모든 열등감을 해소해주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빵을 좋아한다.
폭신한 케이크나 빵 사이에 단 크림이 들어간 빵보다는 단백 한 식빵이나 덜 단 빵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런지 체인점 빵은 내 입맛이 아니다.
너무 과한 맛을 간직하고 있고, 너무 관한 맛을 내다보니 본래의 밀가루 맛이 없다.
그런데, 올 해 겨울이 막 지나갈 무렵에 집 앞에 작고 아담한 빵집이 생겼다.
‘착한 빵이야기’란 간판을 걸고 빵집 앞 칠판뒤엔 분필로 쓴 이해인님의 시가 있고,
새워둔 현수막엔 빵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천연발효 빵이면서 유기농 밀가루를 쓰면서 수제 빵이라는 설명.
드뎌 빵집은 문을 활짝 열었다.
식빵과 블루베리 빵과 단팥빵을 사 먹어봤더니 내 입에 맞는 빵 맛이었다.
달지 않고 단백 한 맛. 인공감미료나 인공색소나 인공화학제를 덜 써서 밀가루 맛이 확 났다.
이틀에 한번씩 빵을 사러 간다. 많이 사지는 않지만 한 개씩 사서 커피와 함께 먹는 즐거움은
하루 행복 중에 한 켠을 차지하게 되었다.
빵집을 가려면 오래된 벚나무를 지나가야 하는데,
처음 빵집을 갈 땐 꽃봉오리가 현미 쌀만하더니, 다음에 갈 땐 꽃이 한 두 개씩 피어나더니
어제는 가지마다 붙어있던 꽃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집중하게 했다.
하얀 꽃구름 같은 벚꽃을 보며 빵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밥보다 빵을 좋아했던 학창시절 내 별명 중 하나는 ‘빵순이’었다.
그때는 빵순이라고 놀릴 때 기분이 별로라 빵을 먹지 말까? 하던 날도 있었지만
빵순이면 어때 나는 정말 빵순이 맞는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