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라는 인간이 정말 싫다.
찬바람이 불 때쯤이면 길거리나 시장에 호떡을 파는 아줌마들이 보이면
21살 때 일이 떠올랐다. 아니 22살이었나?
서울 어느 대학 앞에 작은아버지 네는 식료품가게를 열었다.
과자부터 문방구류와 야채와 과일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잡화점이었다.
그 아줌마는 술장사만 빼고 안 해 본 장사가 없는 분이었다.
그때그때 상황과 계절에 따라 뜨내기 장사를 했다는데
남편은 일찍 병으로 돌아가시고 삼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비쩍 마른 몸에 기운도 없는 얼굴을 한 그 아줌마는 작은아버지가게 앞에서
호떡 장사를 해도 되겠냐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치고 인정머리라곤 손톱의 때 만큼도 없는 분이었고,
그나마 작은어머니란 분이 허락을 해 주셔서
가게 문을 최대한 가리지 않는 상황에서 호떡 장사를 하게 되었다.
호떡 장사하는 아줌마에겐 이제 막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맏딸이 있었다.
가끔씩 호떡 장사를 하고 있는 곳에 엄마를 보러 왔고,
호떡 장사가 잘 되어서 20대의 겨울을 포근하게 보내고 싶었으나
호떡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겨울이란 바람은 바람막이 비닐을 흔들어 놓기만 했다.
그날도 딸은 호떡 파는 엄마를 보러왔고,
여전히 장사는 안돼서 호떡 굽던 손은 멍하니 길가는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추운 날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아줌마와 딸은 말이 없이 조용해졌다.
조용해질 수 없는 상황을 수궁하고 있을 때 어떤 얼굴이 그 딸과 눈을 마주쳤고
서로 어? 하는 순간에 그 딸은 엄마에게 눈짓을 하며 “모르는 척 해.” 하고
회사 동료와 작은 아버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너네집 가게니?” “ 으 응. 아니 작은아버지 가게야”
“그렇구나. 저 분은 누구야?” 호떡 아줌마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그냥 호떡 파는 아줌마야.”
“너랑 잘 아는 사이 같던데. 엄마 아니니? ”
“아니라니까.” 내 목소리는 겨울 바람과 어울리게 냉냉했다.
나는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묻는 인간이 싫다.
왜 너희 엄마가 호떡 장사를 하게 되냐고 물으면 입을 다물게 된다.
‘먹고살려고’라고 대답을 하면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너무 팍팍해지고,
짜증이 솟구치고 내 자존심만 너덜너덜 해지기 때문이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직장 동료를 보내고, 호떡 아줌마와 눈도 마주치지도 않고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나는 참 지지리도 복이 없지, 운도 없지,
내 팔자가 그렇지 뭐! 그런 못된 생각만 가지고 종점까지 갔다.
그때 당시에 가족은 나에게 슬픔이었고,
엄마와 나는 가족의 내력과 비밀을 간직한 ‘창고’였다.
직장에서는 가난한 티를 전혀 내지 않았고,
가족의 비밀을 속이지도 않았지만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엄마의 하루에 가장 큰 기쁨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말수가 적은 뚜하기만한 딸이었다.
‘유희열’의 자서전에서 유희열의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 판사가 물었다.
엄마와 아빠 누구랑 살고 싶냐고 어린 유희열은 대답했다. “형과 살고 싶어요.”
태어날 땐 선택의 여지없이 태어났지만
엄마든 아빠든 같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상황이 지겨웠고 싫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선택할 수 없는 상태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도 선택하기 싫었다.
나는 그래서 엄마를 호떡 파는 아줌마로 바꿔버렸다.
엄마는 그 해 겨울을 다 보내지 못하고 호떡 장사를 그만 두었다.
인정머리라곤 얼굴에 붙은 점만큼도 되지 않고
심통만 더덕더덕 붙어있던 작은 아버진 엄마가 눈앞에서 안보이길 바랬다.
때가 되도 밥 먹으란 말도 하지 않고, 지 입에만 음식을 쳐 넣고,
눈보라가 치면 빗자루를 휙 집어 던지며 눈이나 치우라고 했다.
작은 아버진 엄마를 도둑년으로 몰아 몇 푼 되지도 않는 호떡 판 보따리를 풀어 봤고,
손님하고 바람났다고 나한테 욕을 해 댔다.
“네 엄마 바람났어.”
그때 나도 우리를 놔두고 바람을 피웠다고 엄마를 의심하기도 했다.
혼자 사는 과부가 남자를 만난들 어떤가 말이다.
작은 아버진 작은 엄마와 살면서도 바람을 피웠다는 걸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몇 년 뒤 작은 아버진 풍을 맞아서 반신 불구가 되었고,
착한 우리 엄마는 그런 작은아버지가 불쌍하다고 병문안까지 다녀왔다.
작은아버지가 엄마 손은 잡고 우시면서
“형수 미안해요. 옛날에 못됐게 굴고 바람피웠다고 의심해서 정말 죽을 죄를 지었어요.
내가 죄 받고 있어요. 형수님.”
호떡 장사한다고 형수님 소리도 한번 안하던 인간이 형수님, 형수님 하더란다.
“그런 인간한테 왜 갔어. 작은아버지도 아냐 그 인간은.”
나도 그땐 맏딸도 아니었다. 호떡 장사를 한다고 엄마가 아니고
호떡 장사하는 모르는 아줌마라고 했으니
그 작은아버지나 나나 그때는 가난해 성질이 거칠고 팍팍했고,
보잘것없는 인간이다 보니 차마 말해선 안 될 말을 내 뱉게 되었다.
나와 엄마가 겪은 모든 일은 우리를 이리로 오게 했다고 믿는다.
부끄럽고 차마 밝힐 수 없는 일을 말할게 된 것은
이제 엄마도 잘 살아내서 정원 딸린 집도 사고,
옛말 할 수 있는 날이 왔기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