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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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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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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BY 그대향기 2014-11-19

 

 

 

낮에 일을 하다가 남편이 물었다.

"나는 말이지 당신이 많이 아파서 내 장기를 주면 당신은 살고 나는 죽는다 해도

 내 장기를 당신 줄건데 당신은 어때?"

"으응??..."

나는 쉽게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당신은 못 그럴거야. 나는 죽어도 당신이 애들 다 건사할 것 같아서 죽을 수 있지만

 당신은 애들 때문에 못 죽을거야. 나는 혼자 살 자신없어. 애들하고 같이 살 자신도 없고.

 그렇다해도 당신은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이럴 때는 거짓말이래도 장기를 주고 대신 죽는다고 좀 하지 절대로 거짓말을 못하니.."

 

정말이다.

나는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는 편이다.

얼굴에 금방 표가 난다.

내가 죽고 남편이 산다고 가정을 했을 때 애들이 책임져야 할  아빠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서 그러마라고 대답을 못하게 되었다.

경제력이 엄청 되는 아빠라면 세속적인 욕심으로 서로 모시겠다 할런지 모르지만

크게 그렇지 못한 소시민인 아빠를 누가 책임질거냐 생각하니 거짓말이 안 나왔다.

홀아비 삼년에 이가 서말이고 과부 삼년에 은이 서말이라는 옛말도 있다.

그만큼 혼자 사는 남자의 구차한 살림을 대변하는 말이다.

 

요즘 요양시설이 현대판 효자라고들 한다.

자식들이 줄줄이 있어도 나이들면 스스로 요양원으로 들어 가는 부모들도 있다.

자식들에게 짐덩어리가 되느니 가끔 보면서 마지막 부모자식간의 정을 간직하려 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모셔 놓고 돌아 가실 때 까지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도 있다니 슬픈 일이다.

건강이 좋지 못해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는 경우는 다르다.

일반가정에서 가족들이 충분한 보살핌을 못 할 것 같으면 요양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도 종적을 감춰버리는 자식들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그들에게는 요양시설이 현대판 효자가 아니라 현대판 고려장이 되고 만다.

나이들고 병든 부모님들을 모시고 사는 부부를 보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들도 의식수준이 많이 달라져 가는 요즘이다.

굳이 자식들 하고 같은 집에서 살지 않겠다 하신다.

서로 불편하다고.

옛날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봉양이 이제는 아주 특별한 섬김이 되었다.

 

 

늙으면 누구나 다 죽는다.

나이가 들지 않더라도 아프면 더 일찍도 죽을 수 있다.

부부가 살다가 배우자 중에 누군가가 먼저 가고 혼자가 되었을 때

여자가 남았을 때는 경제적인 문제가 조금 걱정스럽지만 여자는 강하다.

아니 엄마는 강해서 어떻게해서든 자식들 공부시키면서 먹고 산다.

반대로 남자가 남게 되면 경제력보다 생활력이 더 큰 문제가 된다.

능력이 되어 재혼을 하게 되는 경우는 다르지만 혼자 살게 될 경우에는

자식들이 이만저만 큰 고민이 되는게 아닐 것 같다.

홀아비인 아버지를 누가 모실거냐는 문제로 자식간에 이만저만한 신경전이 아니다.

애당초 혼자 된 아버지가 따로 살겠다 선언하셨다면 문제는 다르다.

생활비며 식사문제 빨래나 편찮으실 경우 병원에는 누가 모시고 갈 거냐 등...

이런 세밀한 것 까지 걱정해 주는 자식들이라도 있으면 복 받은 아버지다.

우리 집에 어떤 할머니는 여기 오신지 10년도 넘었는데 딸이 단 한번도 안 찾아왔다.

엄마가 안 보고싶대요? 슬쩍 물었더니 바빠서 그래..바빠서 그렇지 뭐....

말끝을 흐리고 마셨다.

개인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참 지독한 딸인 것 같다.

 

나는 남편을 잘 안다.

혼자서는 못 하는게 너무 많다.

서랍장 맨 윗칸에 자기양말을 넣어 둬도 날마다 자기 서랍을 헷갈려하는 남편이다.

치약을 가운데부터 꾸욱 눌러 짜 쓰곤 뚜껑도 안 닫아 치약입구를 말려 버리는 남편이다.

입었던 옷을 아무데나 벗어 두고는 늘 새 옷을 꺼내 입고 다녀서 집이며 차, 마당에

온통 사계절 옷이 툭툭 튀어 나오게 만드는 남편이다.

차 키를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내라고 야단인 남편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 수술을 했어도 자꾸 살을 파고 들어 내가 다듬어 주지 않으면

걸음을 표나게 절뚝거려야 하는 남편이다.

암수술 두 번

기흉 두 번

독사에 물려서 죽을 고비 한번

전기톱에 두 손가락 절단 봉합

쓰레기소각장 폭발로 화상

고압선 사고로 왼손전체 3도 화상

사다리 추락사고로 오른손 중지 복합골절

자동차 추돌사고로 갈비뼈 4대 골절

지붕에서 추락해 신경계통 부분적 이상이 생겨 얼굴 반쪽만 땀이 나는 남편.....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많았지만 다 완쾌된 요즘.

그래도 불안하다.

남편은 잦은 마취로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가르쳐 준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혼자 공부해서

다시 과 친구들한테 쉽게 이해가 가도록 가르쳐 주던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라 내가 우리 아이들보다 더 보호하고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다. 

전기압력밥솥에 아직 밥을 한번도 안 해 본 남편이다.

그런 남편을 어찌 혼자서 살아가게 하고 내 먼저 눈이 감길까 싶다.

장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 속엔 언제나 다칠까 봐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지금은 일일이 다 챙겨주고 찾아주는 아내가 있으니 이렇게 살아가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지?

막상 혼자가 되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런지.

 

 

부부는 오래오래 같이 늙다가 하루는 너무 하고 한두달 정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혼자 되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도록 그래서 너무 오래토록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이나 아내가 떠나 간 빈 자리에서

가난하게 살게 했던 날이 미안했고

무심하게 바라봤던 시간들이 미안해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그리워하다가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 진심을 들켜버려 서운했을 남편이지만 내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주는게

남편이나 아이들한테 편할 것 같다.

그게 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