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AIR...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비단모래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연인의 숨소리 같은 가을비가 내리는 월요일
주말의 여러가지 공연과 엄마제사까지 치뤄 감기가 골난 연인처럼 찾아왔다.
작가실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책상
많은 후배작가들이 편하게 일하라고 일부러 내책상은 벽을 바라보게 두고
후배작가들을 등 뒤에 두고 일하고 있다.
월요일은 참 바쁘다.
그날 할 원고도 써야하고 미리 섭외는 했지만 주말을 지나는 동안 맘은 바뀌지 않았는지
다시 통화도 해야하고 화요일 것도 미리미리 챙겨야 하니...
분주하게 원고를 쓰고(오늘은 오프닝을 네번이나 고쳤다. 잘 안써지는 날이 있다)
녹차 한잔으로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후배인 0작가가 다가왔다.
선배님...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뭐...혹시..결혼소식?
아니요..저 잠깐 일을 쉬려고요.
가슴이 쿵 낙엽이 방하착 하듯 내려앉는다.
왜?
11년간 쉬지않고 일했더니 몸이 여기저기 안좋아서 집에서 그만 쉬라고 해요
벌써 11년이나 되었어?
네..대학 졸업하자 마자 들어와..이렇게 흘렀네요.
그러더니 가을비 처럼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피디들 한테 얘기할때는 눈물 안나왔는데
선배님께 얘기하니 눈물이 ...죄송해요..
아녀..몸이 안좋으면 어쩔수 없지뭐..
우린 끝이 없으니 다시 만날 수 있구
또 결혼소식 알려주면 꼭 갈게
그녀의 손은 참 가늘고 차가웠다.
이손으로 11년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섭외하고 밤을 새우고
생방송의 피말림을 해내고
그랬단 말이지.
선배님..제가 언제일지 몰라도 혹시 다시오게 되면 그때 선배님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사람아..나는 23년이네...낼 모레가 환갑이야
갈 사람은 난데...그대가 간다니 내가슴이 더 떨리네.
실은 후배작가들이 갈 때마다 가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남은 나도 늘 마음이 아렸다.
특히 오늘..
가을비 내리는 날 후배는 이별을 이야기해서 내 마음을 더 가라앉게 했다.
고생많았네..11년
아침 방송을 하다보니 늘 새벽에 나와야 하는 고통도 컸겠네
그리고 늘 섭외가 안돼 애가 타서 심장까지 졸아들던 날 얼마나 많았을까
써지지 않는 원고때문에 얼마나 날을 새웠을까
그리고 칭찬없는 방송...늘 비판받고 지적 당하고 시청률 때문에 힘들었던 방송을
떠나는 그대...왠지 부럽기도 하네.
나는 왜 이곳에 이렇게 오래 있는 것일까?
23년
방송 클로징을 할 때마다 입안에 가득 고이는 쓴물을 삼키고 삼킨 시간
그러나 그시간이 나에게 아주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몇 번의 수술도 했고
두 아들도 결혼 시켰고
세명의 손녀도 보고(내년에는 하나 더 나올예정)
공부도 해서 학위도 받고
자격증도 이것 저것 따고
요즘은 또 난타까지 해서 후배들을 놀래키고
내가 이곳에 있는 세월 숫자만큼 몸무게도 늘어나고(난 늘 스트레스 살이라 우기지만)
이제 적당히 나이먹어 환갑이란 나이에 가까이 가고 있다.
그동안 떠난 100여명의 작가 엠시 리포터 그리고 함께 일하던 피디들
그렇게 숱하게 떠나보냈는데도
후배가 떠난다하니 쓸쓸하다.
가을에 떠나서 그런가보다.
가을비 오는 날이라서 더 그런가보다.
자꾸 이노래가 입안에서 맴돈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하얀 겨울에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