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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06

멋진엄마


BY 그대향기 2014-10-19

 

 

 

뜬금없이 둘째한테서 이런 문자가 왔다.

"엄만 멋진 여자예요."

"왜 갑자기?"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우리 엄마 참 멋진 여자라고 했어요.ㅎㅎㅎ"

"생활비 떨어졌니?"

"아니고 진심으로 멋진 엄마라고요."

"립서비스는 아니고?"

"아이참...진심이라고요."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 큰 딸들이 엄마를 같은 여자로 봤을 때

멋진 여자란 느낌이 들었다니 좋은 평가라는거다.

왜   멋지다고 느꼈느냐고 물으니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이 그렇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당차게 앞만 보고 나아가고

꽤병 안 부리고 잔머리 안 굴리고

무엇보다도 건강관리를 잘 하고

자존감이 참 강해서 주변의 변화에 휩쓸림이 없단다.

 

 

남편을 위해 뒤로 물러 날 때는 물러나지만

한번 옳다고 판단한 다음에는 끝까지 밀고나가는 고집

일 할 때는 머슴처럼하고 놀 때는 확실히 놀 줄도 알고

아낄 때는 개미처럼 알뜰하다가도 쓸 자리에는 팍팍

미련두지 않고 탈탈 털어 내는 통큰 여자가 엄마란다.

 

 

애들 보기에 헛 살진 않았나 보다.

남편친구들은 우리가 21년 전에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

왜 이런 시골구석으로 왔냐고 한마디씩 했다.

이삿짐을 내려 주던 날

먹걸리 한사발의 기운을 빌려서

이런 촌구석에서 애들 교육은 어쩔거며

여기서 젊은 사람들이 썩을거냐고 했다.

 

그 땐 남편의 사업도 어렵게 되었지만

건강까지 최악이라 다들 위로한답시고 한마디씩 했겠지만

그 말들이 우리에겐 비수가 되어 아팠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오늘 날

잘 나가던 광고사 사장이었던 친구는 대리기사로

유통회사를 하던 친구는 사기범으로 쫒기다

붙잡혀 실형을 살다 나왔다.

건설업을 하던 친구는 중국을 오가며 뭔가는 한다는데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고 가족들 생활비도 못 주고 있다니....

 

큰 욕심 안부리고 그들이 말하던 촌구석에서

남편의 건강을 다지면서도 박봉이었지만

늦깍이 대학공부도 시켰다.

딸 둘 아들 하나

대학공부도 다 시켰고 시골이지만 작은 우리집도 마련했다.

촌구석에서 뭘 할거냐며 걱정하던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나 잘못으로 힘들어졌지만

우리는 착실히 살았고 욕심없이 살았다.

 

그 21년 세월 동안 남편은 몇번의 고비도 있었지만

나는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속으로야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겠지만)

최소한 주변 사람들이나 아이들 앞에서는 담담하게 살았다.

내가 흔들리면 가정이 다 흔들리는거라 여기며.

힘들어도 어려워도 속으로만 삭이며 그렇게 살았다.

 

나는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고 한 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커다란 임무가 내게 주어져 있었으니까.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잎처럼

그렇게 가볍게는 살 수 없었다.

웃음 뒤에 숨어 있었던 수 많은 눈물을 누가 알랴마는

세월의 강물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 주었다.

 

이제 5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 들어서

살아 온 길을 일부러 되짚어 볼 기회는 찾지 않았는데

두 딸들 눈에 멋진 엄마로 비친다니 행복하다.

남편이 값진 보석을 안겨 줘서가 아니다.

애들이 백화점에서 유행하는 옷을 사 입혀 줘서도 아니다.

뭘 해 준게 있다고 그러느냐고 대들지 않고

멋진 엄마라고 인정해 주니 고맙다.

 

다음 주에 1000 여명이 2박 3일 동안

우리 기관에서 행사를 한다.

그 준비로 몇달 동안 이불빨래며

 집 안팎 청소를 한다고 무척 바쁘고 힘들었다.

내일 새벽시장에 가야하고 한 트럭의 부식을 사 오게 될 것이다.

2박 3일 동안 그들의 식사를 감당하느라

발바닥이 부러트도록 뛰어다니겠지만

멋진 엄마는 그래도 행복할 것 같다.

아무나 멋지냐면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