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방에 몇 번 썼다시피 남편은 정말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젊어선 나에게 그렇게 해대던 잔소릴 내가 어느 정도 자기 성격에 맞춰주니까
그 후부턴 애들에게 해대며 볶기 시작했다.
눈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사소한 일부터 굵직한 일까지 쉬지않고 잔소리.
만일 잔소릴 안한 날이 있었다면 그 다음엔 몰아서 더 폭풍 잔소리.
잔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도 내고 될 때까지 억지를 부렸다.
자식은 내맘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사람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애들은 한 집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고
머리 다 큰 애들이 가출이라도 할까봐 나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 가출하면 경찰에 신고라도 하고 강제로 끌고라도 들어오지
만 스무살이 넘었는데 가출하면 그 땐 남남이 되는건데.
아들이 외국에서 안 들어오고 그대로 눌러앉겠다는 덴 저런 이유가 한 몫 했기 때문에
난 더 심각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아들이 오거든 나이도 먹었고 다 컸으니 잔소리 하지 말고
제발 부탁이니 애가 하자는대로 맡기고 인정해줍시다.\"
예상했듯이 단번에 노우! 한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애들만 잘 되면 바랄 것이 없다나?
애들이 아빠가 밟은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나?
지름길로 가게 하기 위함이라나?
아들이 돌아오기로 맘 먹었다가 아버지 잔소리를 다시 기억해내니
갑자기 오기 싫어진다고 할 정도라 내 보기엔 심각한데 이 사람은 그 심각성을 모르고
빙글빙글 웃기까지 한다.
갑자기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가다간 애들이 다 싫다고 떠나고 독거노인이 되게 생겼는데 지금 웃음이 나오느냐고?
왜 나까지 보고싶은 자식 얼굴 내맘대로 못 보고 살아야하느냐고? 했더니
독거노인은 무슨...나는 돈 많이 벌어서 자식,손주들 다 거느리고 살건데....
자식 손주 거느리는 소리하고 있네.
애가 우릴 보러도 안오겠다는데 무슨 손주까지? 꿈도 야무져요 아주.
애가 행복하지가 않대잖아.
어릴적에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상을 못 탔다고
아빠한테 두드려 맞아서 트라우마가 생겼다잖아.
아무리 다녀봐도 자기처럼 자란 애가 하나도 없더라잖아.
돈을 버는 것도, 성공을 해야하는 것도 다 행복하게 살기위해선데 행복하지가 않다잖아.
도대체 뭘 위해서 애들을 그렇게 들볶는건데? 나가서 난 자식을 이렇게 키웠네. 자랑하고 싶어서?
남의 눈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자식들이 하나같이 부모 싫다고 멀리 가서 보러 오지도 않으면
그 땐 뭘 자랑할건데? 아무리 스펙만 좋으면 뭘 하냐고? 마음이 불행한데.
부모자식간에 왕래도 없이 살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냐고?
인생 한 번 살고 가는건데 가족간에 꼭 이렇게 서로 불행하게 만들면서 살아야겠느냐고?
남들은 가족끼리 위해주고 받아주고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없던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라고.
자기 부모가 그러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자긴 그러지 말아야지 왜 싫어하면서 똑같이 닮느냐고?
만약에 이대로 늙어서 내가 독거노인 될 것같으면 이판사판 난 당신하고 황혼이혼이라도 불사할 거니까
그렇게 아슈
돈 많이 벌어서 혼자 그 돈보따리 꼭 끌어안고 살다 싸가지고 가든가? 아니면 새파랗게 젊은 여자랑
재혼해서 살든가 맘대로 하슈
했더니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한다고 버럭 화를 내서 한바탕 싸우고 며칠 말도 안 섞었다.
나는 너무 심각한데 이혼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니?
내가 오죽하면 그러는지에는 생각이 안 미치나?
내가 자기더러 죽으라고 했다고, 말을 그렇게 가리지 않고 막 했다고 뭐라 하길래
그럼 오래 오래 살라고, 나는 스트레스 받아서 일찍 죽을 것같으니까
혼자 남아서 오래 오래 130살까지 살라고 했더니 피식 웃는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들이 다시 왔다가
하루 이틀만 아버지의 본색을 겪고 나면 다시 어디로든 간다고 할텐데
그러면 더 걷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나혼자 아무리 싸우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부끄럽지만 털어놓고 응원을 부탁할 수밖에.
애들 키우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니 다들 놀라는 눈치다.
누워서 침뱉기지만 우리 가족이 해체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있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아들이 왔는데
처음 들어서면서부터 당연히 잔소리 할 줄 알았던 남편이 조용~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휴..저 살 찐거 봐라. 머리는 왜 그 모양이니? 옷은 또 그게 뭐니? 걸음걸이는?\"
그게 현관문에 들어서는 아들에게 하는 첫마디였을텐데 아무말이 없다니....거참 신기하다.
자기 자식은 남의 눈에도 최고여야 하는데 살이 조금 쪄도 안되고 말라도 안되고
옷이 근사하지 않아도 안되고 머리카락이 길어도 안되고 너무 짧아도 안되는
그런 지병이 원래 있었다.
그런데 남의 자식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관대하다.
유태인의 달란트 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공부가 다가 아니다 어떻다 하다가
내가 \"그럼 우리애들은?\"하고 물으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지.ㅎㅎ\" 한다.
이 무슨 이기주의적인 발상인지?
웃는 얼굴도 꼴뵈기 싫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하루 이틀 사흘..... 아무 잔소리가 없다.
아들이 일찍 일어나도, 늦게 일어나도, 밤중에 운동한다고 팔굽혀펴기를 하느라고 씩씩대고 있어도
일절 잔소리가 없다. 나는 좀 조마조마한데.
며칠후부터 잔소릴 시작할래나? 궁금할 지경이었다.
운동을 하면 공부할 궁리는 안하고 맨날 밤중에 뭔 운동이냐고
공부하고 있으면 친구는 만나러 안 나가느냐고, 앞으로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느냐고,
친구 만나러 나가면 네 친구는 잘 하고 있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고 그랬었다.
격투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TV중계라도 보고 있으면 난리를 쳤다.
맨날 피터지게 싸우는 게 뭐가 좋다고 싸움꾼이 될래나?한심한 놈 저러고 있다고.
에미가 돼가지고 그 꼴을 그냥 둔다고.
도장으로 운동이라도 하러 다니면 더 난리였다.
그 딴 데 힘쓰고 돈 쓰고 다니라고 내가 공부시킨 줄 아느냐고.ㅠ
도대체 나가라는건지 들어오라는건지
애가 너무 힘들어서 태권도 그만두고 싶다고 그렇게 사정해도 끈기없다고 못 그만두게 한 게 누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 애들이 저러고 사사건건 일거수 일투족 간섭받고 사는 게 얼마나 불쌍한지.
애친구나 선후배들도 신기해한다고 했다.
아니 졸업도 하고 군대도 갔다온 다 큰 아들을 운동도 맘놓고 못 다니게 하는 아버지도 있느냐고.
남들은 컴퓨터 게임중독에, 술 담배도 많이 하고 이성문제로 속썩이기도 하는데
그런 속 안썩이면 됐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하면
봐도 어디 가서 위는 안 쳐다보고 꼭 아래 못된 것만 보고 오느냐고 나무랐다.
그래도 고집이 있어서 저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딸은 나은데
아들은 은근히 마음이 약해서 아빠가 저렇게 나오면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저희들끼리 우리는 왜 이런 집에서 살아야하냐면서 서로 위로를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리 역성들어봤자 지 에미가 싸고 돌면서 아빠만 왕따를 시켜서
이젠 애들까지 말을 안듣는다고 난리니 대놓고 편도 못 들겠고 그렇다고 두고 볼 수도 없고.
나는 애들과 지내면 행복한데 저런 남편 때문에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
한번은 아들이 그랬다.
\"아버지. 저도 이제 어른이라고요. 엄마한테 세뇌당할 나이가 아니에요. 저도 판단력이 있어요.\"
그런 남편이 요즘 거의 한 달 째 조용하다.
첫째는 중보기도의 힘이겠고 내가 황혼이혼 운운한 것도 처음으로 와닿은 게 아닐까 한다.
자기가 지금 돈도 없고 ,무보수 마누라 직원이 회사살림을 다 해주는데
애들한테 또 다시 예전대로 하면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노라 한 협박이
제대로 먹혀서일 수도 있다.
이제 좀 늙긴 늙었나보다. 약해진 걸 보니.
이제 내마음이 여간 편한게 아니다.
아들이 묻는다
\"어머니 아버지 맨날 아침마다 싸우는 소리에 내가 잠을 깼었는데 요새 웬일이세요?\"한다.
\"얘야. 요즘 같아선 내가 살만 하다. 아버지가 하루에 한번씩 욱하지 않으니 집안이 얼마나
평화로운지...이대로만 가면 계속 델고 살만 하겠어. 엄만 아버지가 먼저 싸움 걸지 않으면
화 안내\"
\"ㅎㅎㅎ.그러게요. 아버지가 요새 이상하게 잔소리도 안하고 욱하지도 않고 웬일이지?\"
남편이 눈을 하얗게 흘긴다. 나이도 어린 내가 자길 델고 산다고 해서 건방지다는 뜻일게다
그래도 칭찬인데 뭐 어때?
암튼 요즘 나는 이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