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만에 아니, 3년만에 몸살이 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동네 병원을 갔더니 차트를 찾아 본 간호사가
\"3년만이시네요!\" 해서 알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드디어 탈이 난 모양이다
사실 구정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큰딸램이 사위 대신 가게를 봐야 한다며
미안해 하며 외손녀를 우리집에 맡겼다
이제 28개월 된 외손녀는 이달 24일에 또 수술을 앞두고 있는지라
다니던 어린이집을 미리 퇴소했더니 낮동안에 봐주는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사위가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플랫슈즈 가게를 한다며 시작을 한 게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마도 가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걱정할까봐 자세히 말은 안 하지만 말 안한다고 모를까?
경기 돌아가는 것만 보면 뻔한 것을....
이번 설에 온 사위 얼굴도 썩 밝지는 못한 걸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써 지도 나도 모른 체 할 뿐.....
그래서 낮동안 사위가 알바를 하는 모양인지라 딸램이 낮에는 가게를 나가야
할 것 같다니 내가 외손녀를 맡아 보는 수 밖에.
적어도 다음 주까지는 봐줘야 하는데 그만 덜컥 내가 몸살이 나고 말았다
이제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외손녀를 따라 댕기며 놀아주랴, 씻기랴, 재우랴
종종 거린 게 무리였나 보다
아, 나도 확실히 나이를 먹는구나!
밤에 자는데 목은 침을 못 삼킬만큼 아프고, 몸에 열도 나는 것 같고
온몸은 두드려 맞은 듯 다 아프니, 아침이 되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외손녀를 맡은 지 하루 만이라 난감했다
딸램에게 말을 할 수도 없고,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긴 하는데
끼니 때마다 밥을 차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있는 반찬에 대충 상을 차리니 먹는 사람도, 차리는 사람도 밥맛이 날리가 없다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는 남편의 말대로 마스크를 쓰고 파카에 모자까지 쓰고
병원엘 가니 의사가 진료하고 3일치 약을 지어주며 잘 먹으란다
그러면서 한 번으로 안 떨어질 듯하니 약 먹고는 또 오란다
집에 오면서 약국에서 지은 약을 바로 하나 먹으니
집에 와 조금 있으니 감기약이 으레 그렇듯 비몽사몽이다
수술하기 전에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고 했다는 손녀에게 옮길세라
마스크까지 쓰고, 손녀를 봐주려니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런데다 손녀는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어지르고, 조금만 제 맘에 안 들면
\"할머니 미워!\"를 연발하지 않나 울고 떼를 쓰지 않나 대략난감이다
손녀도 며칠동안 엄마, 아빠를 못 보니 놀다가도 가끔 \"엄마 어딨어?\"하며
찾는다
손녀가 잘 있는지 전화를 했던 딸램이 이런 상황을 알고는 어제 외손녀를
데리러 왔다 약속된 날짜가 아직 멀었는데 부랴부랴 데리고 가니
또 미안해졌다
에구, 나이를 먹는 건 이런 거구나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오랜만에 몸살이 되게 나니 정말 건강한 거야말로
커다란 축복임을 새삼 깨닫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