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왠지 여름의 꼬리가 남아있는 느낌이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설악산 단풍을 보고도 가을이 깊어진 실감이 나질 않음은 왜일까.
여름동안 수고한 선풍기를 씻어 넣고 여름 옷을 정리했다.
윤지와의 약속대로 아들의 생일에 아들집에 다녀왔다.
할머니가 몇밤을 자고 갈것인지 제일 관심사인 윤지는 자주 좀 올수 없느냐고 말한다.
어느새 자라서 그런 말을 할수 있는지 신기하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겠지.
언니 언니 하며 따라다니는 윤하도 너무 이쁘다.
윤하를 챙기는 윤지도 대견하다.
\"할머니 세밤만 자고 가면 안돼요?\"
\"두밤만 자고 갈게.\"
\"그럼 가자 마자 다시 오면 안돼요?\"
할머니가 고픈 윤지는 자꾸 졸라댄다.
할머니만 오면 어리광이 늘어서 윤지의 혓바닥이 반토막이 된다는 며느리의 말에 웃었다.
\"윤지야 할머니가 왔다고 엄마말 안들으면 안되는거야. 그럼 할머니가 안와.\"
내 말에 알았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이쁘다.
복지관 근무도 계약된 구개월이 가까워서 십일월이면 마감을 한다.
겨울 동안은 당산동 고모님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촌동생네 부부가 안식년을 맞아 사개월동안 독일에서 지내고 온단다.
오늘 동생네 부부가 떠났다.
\"언니만 믿고 떠나. 엄마를 부탁해.\"
사촌동생의 부탁에 안심하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십일월까지는 월화수는 오산에 목금토일은 당산동에 머물게 되겠지만
복지관 일이 끝나는 십이월부터는 집을 비워두고 이월까지 당산동에 머물 계획이다.
\"월수금은 아줌마가 오니까 언니 볼일 보러 나가도 돼.\"
그렇게 말하는 사촌동생 옆에서 그럼 그럼을 말하는 고모를 보며 웃었다.
압구정동에 친구들 모임에도 나갔다.
윈제과에서 내어준 빙수값을 계산하겠다고 나선 친구와 받지 않겠다는 친구의
싱겡이는 이 달에도 변함이 없었다.
영원한 우리의 아지트 윈제과가 언제까지 존재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열두명의 친구들은 기분은 늘 이십대라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다.
허물없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좋다.
\'가회동 북촌을 만드신 정세권님의 후손을 찾습니다.\'
서울대 교수가 쓴 글을 접하고 내가 손녀임을 알렸다.
\"익선동 한옥마을을 먼저 만드시고 북촌은 그 후에 만드신건가요?\"
그런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사람은 고모님이기에 고모를 소개해주었다.
구십이 넘으셨지만 정신이 참 맑으시다.
\"왜놈들이 서울에 적산 가옥을 짓기 시작해서 왜놈들을 막기위해서 서민 한욕을 서울에 많이 지으셨지요.\"
고모의 설명은 교수 출신답게 정연했다.
조선물산 장려회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 어학회 사건 이야기도 나온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장면들이 고모의 입을 통해서 그림처럼 펼쳐진다.
가회동 삼백번지 이층집에 아랫층은 조선물산 장려회이고 이층에는 아이들이 공부밤이 있었다니
눈에 보이는듯 하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늙어가는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또 하루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