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들이닥쳤다
소나기처럼
나뭇잎들이 가을물로 번져가고 들판은 그야말로 황금가루를 뿌렸다
어디든 카메라렌즈를 들이대면 가을풍경이고
액자를 갖다 맞추면 한점의 그림이다.
그 뜨겁던 여름이 가고
추분까지 지나고 나니
어딘가에서는 첫서리가 내렸다고 하고
설악산에서 천천히 단풍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코스모스 지천으로 흔들리는
이 가을
창사 49주년을 맞아 일주일간 그야말로 바쁘다바뻐를 외치며 특집을 해냈다.
그동안 하던 포멧에서 벗어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청취자주간으로 꾸몄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데일리 방송은 쪽지시험이고
특집방송은 무슨 국가고시를 치르는 것같다고..
매일매일 섭외에 시달렸다
1년간 방송한 청취자들중 기억에 남는 분들을 다시 스튜디오로 모시기도 하고
전화연결을 하면서 1년의 방송을 마무리도 하고 추억해보기도 했다.
추석을 지내고 감기까지 들었다.목이쉬고 기침에 열까지 났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새로 시작한 자격증공부를 하는 날이고
목요일은 대학생특강도 잡혔고 금요일은 친구들과의 모임까지 잡혔고
담주 월요일분 녹음까지 빡빡한 일상속에
매일 2시간 특집생방송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하루에 청취자를 일곱분에서 열한분까지 전화연결해야하는 상황
섭외에 대본에 ...
노래자랑은 리허설도 해야했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날짜도 지나가고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가는 것
월요일부터 금요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어제저녁은 모처럼 어릴적 친구네명이 만나 오래도록 웃다 돌아왔다.
내가 창사특집을 시작한건 27주년 때 부터였다.
그러고 49주년을 맞았으니 스물두번째의 창사특집을 해낸 것이다.
그러고는 가만히 내가슴을 쓰다듬었다.
잘했어 이작가!!!
대학생 취업특강에 가서 방송작가의 세계에 대한 특강을 했다
22년간 필드에서 뛰고 있는 영원한 현역작가라는 소개를 받았다.
삼십대 중반에서 오십대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나이까지 일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이력서에 첨부되었다.
22년...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릴때 페스탈로찌 선생님의 위인전을 읽고 나도 페스탈로찌 선생님 같은
어진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꿈은 그냥 꿈으로 남았다.
그런데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고 일기쓰는 것을 좋아했고
이상하게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백일장이 열리는 곳이면 달려갔고
또 고맙게도 여러군데서 상을 타게 되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연하게 시를 쓰게 되고
방송작가가 되고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은 가지않은 길로 인도했다.
그리고
고단하고 암담한 일 많았지만 내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일들이 참 많았고
22년간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첫해 만난 청취자를 지금까지도 인연이 되어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어제 방송에 오신 할아버지 한분은 10년전 부부가요열창을 열었을때 부부가 출연해 우수상을
받으신 분이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봉투하나를 내미셨다.
그때 상품을 담아 드렸던 봉투였다.
그봉투를 10여년간 간직하고 계시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그냠 무심히 보내드린건데 그분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기쁨이되셨다니
다행이다.
허긴 어떤 애청자는
방송국에서 선물이 올때마다 모았다고 100여장의 상품봉투를 가지고 계시다.
그러면서 방송국 봉투도 세월과 함께 많이 변했다고 하시면서 작가가 쓴 주소 글씨만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
그분도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시면서 나중엔 수필을 쓰게 되셨고
지금은 노인복지관 어르신 돌보미로 일하고 계시다.
청취자들께 상품을 보낼 때 꼭 한편의 시를 넣어 보내드리는데
그 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셨다
기억에 남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분들이 내 방송의 멘토셨고 주인이되셨다.
끊임없이 사랑해주신 덕분에 내가 22년을 현역으로 있게 된것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좋아했던 소설가 최인호님이 창사특집기간에 돌아가셨다.
아름다운 가을길을 밟고 떠나셨다.
영원한 청년작가셨다.
투병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며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하루하루가 축제였다고 말씀하신
멋진 선생님
그분의 영화를 보며 소설을 읽으며 나도 그분을 닮고 싶었다.
나의 22년
생각해보니 힘든일도 많았지만 멋진 축제의 나날이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내년 50주년
벌써 창사특집위원회가 꾸려졌다고 한다.
그 50주년 특집방송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49주년 특집의 축제를 멋지게 마무리 했으니
이제 당분간은 또 많은 분들을 만나며 즐거이 하루하루의 작은 축제를 만들어 가면 되리라.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그 모든 몫은 나를 사랑해주신 분들이시다.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돌려드린다.
다시 어제까지의 분주함을 쏟아내고
마음을 가을로 도배해야 겠다.
내가 꽃을 보면 꽃은 꽃이되고
꽃이 나를 보면 나도 꽃이되고
내가 별을 보면 별은 별이되고
별이 나를 보면 나도 별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