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이다. 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놓고 지낸다. 현관문도 걸개가 허용하는 만큼은 열어놓는다. 그 틈새로 제법 바람이 들어온다.
문뿐이 아니다. 옷도 최대한 가볍게다. 윗옷도 겉옷 한 겹만 걸치고 지낸다. 그래 인터폰이 울리면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한데 밥 먹고 운동을 하고 단호박을 잘라 속을 파내고 있는데 벨이 울린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스크린을 본다. 남자다. 뭔가를 손에 들고 있는 게 경비실 아저씨 같다. 경비실에서 나왔다면 없는 척할 수가 없다. 더더구나 현관문까지 쬐금 열어놨으니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덜컥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누구세요?’ 하고 묻는다. 그랬더니 ‘경비실에서 나왔습니다.’가 아닌 ‘세상이 하도 험해서······.’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난 일단 안도한다. 최소한 문을 열고 나가지는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거절해도 되니까.
난 주저하지 않고 들이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세상이 험한데 내가 널 어찌 믿겠냐? 난 남자가 돌아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혼자 낮게 중얼거린다. 대낮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남자 혼자 달랑 와서는 험한 세상을 꺼내면서 문을 열어달란다. 그게 아니라도 집안에 사람 들이기가 무서운 세상인데 일면식도 없는 남자를 내가 뭘 믿고 열어주겠나?
하지만 뒤끝은 영 떨떠름하다.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이 찾아오면 겁이 많은 난 늘 문을 열기 전에 확인부터 하는 게 버릇이 됐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지. 난 호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잘라내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 또한 칼질한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조금 씁쓰름한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