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송을 시작할때 큰아이가 6학년
작은아이가 4학년 때였다.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하고...
아이들도 어느정도 엄마의 손을 떠날 때쯤이 되었고
결혼하고 10여년 살림만해온 내게 어찌해서 빙송작가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처음 일하러 나갈때는 아이들이 엄마가 필요할 때는 꼭 옆에 있으리라 다짐했고
또 아이들에게 불편함이 따르면 일을 당장 그만두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일이라는게 어디 그런가!
방송은 끝났지만 내일 아이템회의에 섭외에 그리고 간혹 함께하는 회식까지
집에가는 시간이 늦어질때 바늘방석 처럼 좌불안석이 됐다.
그렇지만 그런 표를 내지 말아야했다.
일하는 엄마기 때문이다.
다행이 아이들이 커서 그다지 많은 불편도 없었지만 간혹 비오는 날
우산을 챙기지 못한 아이들이 비를 맞고 와야 했고
준비물을 제때 챙기지 못해 빈손으로 학교를 가야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러나..점점 아이들도 엄마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나도 엄마 열심히 일하니까 니들도 엄마 늦으면 밥 잘 챙겨먹고 동생잘 챙기고 숙제해놓고 놀아야 한다고
주문에 주문을 주었다.
그럭저럭 큰아이가 6학년 졸업을 하고 3월에 개교하는 신설중학교에 입학배정을 받았다.
3월5일 입학식..
입학식과 개교식까지 그야말로 학교는 축제였다.
우리방송 리포터를 보내 새봄 새희망 새출발이란 타이틀로
개교를 하는 소감을 교장선생님께 듣고 입학식 하는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신설학교 1학년에 거는 기대도 컷트에 담아왔다.
이작가님..그 학교에 갔다가요..아드님 컷도 따왔어요
학교에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고 소개해 주던데요.자알 생겼고 말 잘하던데요..
아들 입학식도 가지 못한 엄마였기에 마음한켠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그 소리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편집과정에서 컷도 많고 시간이 길어 몇몇 학생 몇몇 학부모 컷을 편집해내야 했다.
우리아들 것도 들어내...
그런데...아들은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엄마방송을 틀어놓은 것이다.
생애 첫 인터뷰..얼마나 떨리고 신기했을까?
라디오로 나오는 목소리는 얼마나 궁금했을까?
귀를 기울이고 아무리 기다려고 아들의 목소리는 나가지 않았다.
나도 섭섭하기는 했지만 내 아들것을 편집하지 않으면 ..그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갔더니 큰 아이는 종알종알..입학식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학생대표로 입학선서를 했고...교장선생님께 칭찬을 받았고...아는 친구들 만나서 좋았고..
그런데 엄마 나도 인터뷰 했는데 왜 안나왔어요?
응 ...
저요 엄마 안오셨어도 씩씩하게 입학식 하고 인터뷰도 잘 한것 같은데...
친구들에게도 오늘 나올거라고 말해뒀는데 안나오잖아요.
응....
그냥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그날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큰아들은 그 신설학교 1회 졸업생이 되었고
졸업식날 교장선생님께 담임선생님께 덥썩 큰절을 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후 아들은 간간 방송으로 목소리를 내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두고두고 생애 첫방송이 편집 된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