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한것은 언니와 나의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기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고양시 요양병원을 검색하고 주소를 찍어서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요양병원 순방에 나섰다.
다행히 호수공원 앞에 가까운 거리에 괜찮은 요양병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모시는데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구급차가 와서 아버지를 싣고 갔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아버지는 더 편해지신듯 보였다.
모신지 이틀만에 중환자실로 옮기고 혼수상태로 접어든지 벌써 나흘째다.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곤란이 왔다.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고 언니를 계속 불러대시던 아버지가 호흡기를 달고
정신을 놓고 계신다.
아버지를 사십년 모신 언니는 벌써부터 눈물 바람이다.
아버지때문에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젠 자유를 얻을것이야..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언니가 병 나기 직전에 아버지와 떼어놓은 일은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엄마를 만나러 가시는 준비를 하시는게다.
성당 연령회에 지금 상황을 알려놓고 임종시에 옮길 일산 병원 장례식장도 알아보고
우리의 이별 준비는 고작 이런것이다.
구십삼세의 고모님이 오셔서 오빠의 손을 잡고 한동안 바라보셨다.
편히 가슈... 내 곧 뒤따라 가리다..
고모는 그렇게 말씀하신다.
폐렴이 와서 열이 오른다.
폐렴을 이겨내시던 삼년전과는 아버지의 체력이 다르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는것을 직감할수 있다.
육십이 넘은 딸이 구십대 아버지께 신세만 지고 해드린것이 없어 가슴이 아프다.
용돈 한번 드리지 못했는데 가신단다.
죄송 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라구..
마치 내가 언니인것처럼 언니를 타이른다.
언니 그동안 수고 많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