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몇 번 벼이삭이 올라온 논에 가서 참새를 쫒았던 적이 있다. 참새를 쫓는 일보다도 더 힘겨웠던 것은 축축 늘어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시간은 더디 가고 몸은 궁시렁거리던지. 그때를 생각하며 몇 년이 지나서 지어놓은 시도 있을 정도다. 제목은 ‘참새 쫓던 날’이다.
한데 그 후 몇 십 년이 지나서 50대의 아줌마가 되어 난 또 그 일을 겪어내야 했다. 장맛비가 온다기에 서둘러 콩을 직파했던 게 화근이었다. 작물들이 어떤가, 해서 며칠 만에 간 밭 여기저기서 콩이 고개를 쏙쏙 내밀고 있었다. 지난 3월 30일 강낭콩을 심어놓고 한 달이 지나서야 싹을 보았던 터라 그렇게 일찍 싹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올라오는 싹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데 그것도 잠깐. 다른 문제가 내 미소를 거두어갔다. 문제는 비둘기였다.
노오란 싹이 올라올 때마다 비둘기 녀석이 똑똑 잘라먹어 버린다. 이웃의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나보다도 더 걱정을 하신다. 난 본의 아니게 비둘기 쫓는 아줌마가 되어야 했다. 저녁엔 해가 저물어 어둑해져야 집으로 오고, 아침엔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했다.
풀은 씨받기 전에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틈틈이 가서 뽑아줘 더는 뽑을 풀도 없었다. 작물도 자리를 잡은 터라 손 댈 곳도 없었다. 빈들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밭을 내려다보려니 시간은 멈춰버린 듯 더디 가고, 몸이 찌뿌듯하다. 일어나 밭을 둘러보는 것도 한두 번이면 족할 일. 일할 때는 잘도 가던 시간이 못 견디게 나를 에워싸고 놔주질 않는다. 견디다 못해 둘째 날은 이웃 할머니 풀매는 밭에 가서 거들며 틈틈이 나와 본다. 셋째 날은 무씨를 받기 위해 놔두었던 무를 뽑아내고 콩 심을 데를 마련한다. 잎이 막 올라오기 시작하여 옮겨심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뿌리가 실하기에 콩 모를 뽑아다 두덕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심는다. 그리고 어제 넷째 날은 여유가 있는 땅콩 두덕에도 가장자리에 한 줄씩 콩으로 채웠다. 그렇게라도 해야 시간과 마주한 채 더디 가는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서다. 그랬더니 시간이 마주하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쑥쑥 지나간다.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좀 쉽게 일을 하려다 외려 비둘기 쫓느라 일하는 것보다 더 고역인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몸은 베베 꼬이고, 마음은 죽을 맛인 고행 아닌 고행의 시간을 말이다. 그것도 새벽 5시부터서 8시까지 무려 하루 15시간씩이었다.
내년에 몸이 좀 고달프더라도 죄 모를 부어서 옮겨 심어야지. 뒤늦게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