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박 정 애
사회복지 회에서 본당 어르신들을 위해 아주 싸게 영정사진을 다음 주일 날
찍어드린다며 신청을 하란다. 주위에 형님들이 환갑 때 찍은 사진이 너무
젊어서 다시 찍어야겠다며 신청을 하러간다.
돌발사가 아닌 자연사로 가신 분의 영정사진은 세상의 삶과 적당히 타협이 되었을
때가 좋다며 너무 오래 전 사진도 장례식 때 보며 현재의 인물과 구별이 안 되니
칠십을 전 후한 어르신들은 꼭 찍어 두는 게 좋다며 권한다. 한 분 두 분이 신청
하더니 제법 많은 인원이 신청했다고 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하고
성당 문을 향해 걸어 나오려는데 뒤에서 형님은 사진 안하느냐고 물어오기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 안했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내년이며 칠십이다. 지난날이 돌아보아진다. 어머니께서 환갑 다음해에
나를 보고 내 수의는 너 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윤달이 있는 해에 하면
좋다고 말씀하셔서 어머니 맘에 드시는 옷감으로 끊어드렸다. 당신이 입고 가실 수의를
손수 동네 대소가 어른들과 찰밥을 해먹어가면서 종일 만들었다면서 정성스럽게 개켜
넣은 옷을 상자에서 꺼내어 내게 보여주시면서 이 옷을 입고 너 아버지를 만나서 너가
해주더라고 하면 좋아하시겠지 고운 옷을 입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가는 젊은 연인의
표정이 저렇게 밝을까? 남다른 금슬로 지내시다가 먼저 가신 아버지를 못 잊어하시던
어머니, 어서 너 아버지한태 가야지 우리 삼남매는 도시에 있는 학교 다닌다고 집을
떠난 후 직장생활, 결혼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신 후 20여년을 큰 집을 지키면서 과수 농사를 지으시다 지금 내 나이보다 젊은
67세에 하늘 나라로 가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보지 않았던 자식들에게 야속하다는 표시는 전혀 아니
하시면서도 고운 옷 입고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이
남편의 대한 나의 사랑과 비교가 된다. 함께하기에 소중함을 잊고 산다. 소중함 보다
은퇴하고 늘 붙어있으니 원망거리가 더 눈에 띄어 자주 투닥 거려진다.
일전에 계모임에서 남편 흉을 보는 우리에게 남편을 먼저 보낸 친구가 행복한 줄을
모르고 사는 우리가 얄밉다고 했다. 거실 중앙에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갈 날이 머지
않음을 감지한 남편이 찍자고한 가족사진을 우리도 자주 보았다. 그 사진을 들려다
보면서 즐거울 때나 슬플 때에 남편에게 하소연 한다고 한다. 좋은 일에는 함께 못
누려 속상하고 굿은 일은 함께 의논할 상대가 없어서 속상한다면서 노래 가사처럼
있을 때 잘 하라고 부탁한다.
황혼이 짙은 가을 들녘은 바쁘다. 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막바지 가을걷이에
들어섰다. 알곡을 담을 그릇에 일생의 삶을 담아본다. 영정사진과 수의도 일생
살다간 흔적으로 마지막 길을 곱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별을 고하는 옷이고 사진이다.
먼저 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남은 사람이 함께 할 때 추억과 후회를 일구어 줄 사진
이기에 함께 지냈던 가장 가까울 때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적당하다고 했다. 가고 난 뒤
허둥지둥 옛날 사진을 복사 하여 내 거는 사진 보다 살아있을 때 내 마음에도 드는
사진이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수 지으셔 입고가신 어머니의 수의가 영정사진을
찍지 않겠느냐는 이 시간에 그 일들이 어제일 같이 생각이 날까?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우리도 영정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찍어 둔거 있잖아“ 환갑 전 둘째 아들 결혼 때 둘이서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을 큰방에 걸어 두고 있다. 그리고 독사진도 각 각 찍은 게 있다. 그게
영정사진 이라고 찍어 둔거라고 한다. 좀 더 젊고 활기찬 모습을 자식들이 보면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게 낫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구부정한 노인네로 남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영정사진 지론도 또 그럴 듯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