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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하여..


BY 꼬뿌니 2012-12-16

우리 가족은 경주 최씨성을 가진 남편과 애들, 안동김씨 성을 가진 나.

이렇게 모두 4명이다.

그러니까 나와 성씨가 다른 최가들 3명은 지금 컴퓨터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영화를 보려는 중이다.

딸랑구는 영화보며 먹겠다고 팝콘대신 귤을 챙겼고, 아들은 과자를 준비 했다.

(홀로 김가인 나는 이래저래 왕따인 셈이다. 아니, 내가 저들 셋을 왕따시키고 있다고 믿고싶다.^^)

막 개봉관에서 내려진 최근의 따끈따끈한 영화를 보자는 아이들의 의견과

지나간 옛날 영화도 좋은 영화가 많으니 자기가 추천하는 걸로 보자는 남편의 의견이 팽팽하다.

한참을 왁자하게 각자 보고싶은 것을 보겠다는 투지를 보이더니

막간에 자기의 끗발이 제일 열세임을 느낀 아들 녀석이 황급히 내게 콜을 요청하러 왔다.

 

그때 나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옥장판의 온도를 한껏 올려놓고 새벽에 배달 된, 미쳐 읽지 못한 조간 신문들을 챙겨 머리맡에 둔채

(주여~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찬바람 피해 두다리 쭉뻗고 편히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를 내어 주심에...)

이러며 옥장판과 극세사 이불의 포근함을 혼자 만끽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들 녀석은 제법 큰 소리로 저쪽 방에 있는 그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엄마, 나오셔서 엄마가 보고 싶은 영화로 검색 해보세요~

오늘은 특별히 엄마한테 선택권을 양보하지 뭐..한다.

그리고 다시 작은 소리로 지가 보고싶은 영화 제목을 슬쩍 흘려준다.

물론, 저들은 들을 수 없는 소리로..

나참..이럴 땐 어찌해야 한다지? 대략 난감이다.

오후에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의 저질 체력은 걍 누워있고 싶음이 간절 할 뿐이다.

평소엔 배꼽 빠지게 웃기는 코믹이나, 손에 땀이 배는 액션 스릴러를 즐기는 편이지만

지금 이 순간엔 영화고 무에고 귀차니즘이 나를 점령해 버렸다.

 

우리 식구들은 나를 각각 다르게 부른다.

남편은 나를 \"김틀러\" 란다.(히틀러에 나의 성을 합성한 것이다.)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나의 독재가 심하다고 억울해서 생각해낸 표현이다.크하ㅡ학~

옛 말에 최씨가 앉았던 자리엔 풀도 안 난다고 했는데, 그리 독한 최씨들 틈에서

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투덜대면,

그 독한 최씨를 하나도 아니고 셋 씩이나 혼자 이겨먹는 김씨는 정말 위대하다고 말하는 그다.

애들은 나를 \'조폭마눌\" 또는 \'군기반장\" 이라고 한다.

아마도 눈뜨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각자의 소지품들을 하나씩 들어가며

음..어젯밤 잠든 틈에 복뎅이(딸 닉네임)가 댕겨갔구만. 허물 한개 찾아가라~ 거나

똑똑이(아들 닉네임)가 거실에서 늦게까지 노셨구만. 충전기 네 방에 갔다놔 넘어질 뻔 했잖아..

뭐 이런식의 말투 때문이지 싶다.

언뜻 보면 정말 나의 독재공화국 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

한번은 모두 모여 이야기 중에 아들 녀석이 이렇게 물었다.

엄만 식구 중에 무서운 사람 한 사람도 없죠?

왜 그렇게 생각하니? 난 니네들이 무서워. 너도 무섭고 누나는 더 젤 무섭고..

그랬더니 남편이 난 애들은 하나도 안 무섭지만 마누라가 젤 무섭더라. 에고 무셔~

무서워 죽겠는척 한다.

아들이 헷갈린다는 표정으로 정리를 한다.

에이~뭐야?

우리집 피라미드의 맨꼭대기는 대체 누구란 말야?

아빠는 엄마가 젤 무섭다니 아빠보다 엄마가 위인 것 같고,

엄마는 우리가 젤 무섭다고 하니 우리가 엄마보다 높은 건가?우왕``우리가 먠꼭대기?

아니지? 아빠는 우리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니..그럼 아빠가 맨꼭대기?

아빠! 우린 지금 한창 사춘기라구요.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구요. 신경 좀 쓰세요~

떼끼~ 아빠는 오춘기다 이눔아~ 뭐 대충 이렇다.

 

요즘엔 한지붕 밑에 살면서 각자 따로 논다고 걱정들이다.

거울 한번 덜 보고 아침 식사를 제대로 먹고갔음 하는 에미 맘은 아랑곳 없이

굶더라도 그 바쁜 시간을 거울앞에서 다 보내고야 마는 한심함을 이해 못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이 열광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눈 높이를 맞추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남편의 소통 철학이다.

그는 가끔 핸드폰에 최신 인기곡을 업로드시켜 달라며 아들과 컴앞에 앉곤 한다.

덕분에 벨소리도 컬러링도 모두 최신곡이다.

수시로 바뀌는 벨소리 탓에 어떤 땐 자기 벨소리인지 모르고 서로 얼굴만 바라볼 때가 있다.

결국 아차하며 남편이 전화를 받으면 우와.. 우리아빠 벨소리 정말 쩐다~(애들의 반응이다.)

그 뿐이랴. 걸그룹 멤버들 이름과 얼굴도 낱낱히 기억하고 있다.

그의 뜻에 공감은 가나, 도통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나는 책을 보거나 신문 보는 일로 혼자 즐긴다.

이쯤되면 내가 왕따임을 인정해야 하는건가?

그래도 꿋꿋하게 내가 저들을 따 시키고 있다고 우겨보고 싶다.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또 한번 선심을 쓸 일이다.

 

아들 녀석은 자꾸 눈을 찡긋찡긋 신호를 보내며 재촉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 눈짓만으로 통하는 사이였더라?)

아빠! 기다리세요. 엄마가 보고 싶은게 있대요.(아빠가 무서워 하는 엄마께서 납신다...ㅋㅋ)

에흠..좋았어~그렇게 까지 한다면야 뭐..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선다.

의자에 얼른 방석을 놓아 주며 \"엄마! 쓰리디 안경 엄마가 쓰실래요?\"

근데, 욘석이 안방에서 슬며시 힌트 줬던 그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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