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 같은 첫눈이 뽀얗게 내린다.
하얀 털실 뭉치 같은 개 두 마리를 서로 묶어 놓아서
한 마리가 이쪽으로 가면 이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끌려간다.
쟤들은 어릴 적부터 한솥밥을 먹은 형제이거나 부모 자식 간이라 여겨진다. 부부는 아닐 듯.
주인입장에서 관리하기 편하게 두 마리를 묶어 놓은듯하다.
그리고 싸울지 않고 서로 배려를 잘하기 때문일 듯.
버스가 빌빌 기어간다.
장님이 신호등 찾듯, 무릎에 퇴행성 관절이 온 듯, 여차하면 지각을 하겠다.
20분 이상 늦게 되면 도서관에 전화 한통 넣어야겠다.
버스가 눈썹 날리게 달리지 못하고 으싸으싸 걸어가고 있다고.
다행이 2분 지각이다.
눈으로 인해 도서관이 한적하고 조용하다.
데스크에 앉아 스케치북만한 창을 본다.
창이 방금 펼친 도화지처럼 뽀얗다.
반납하는 책들이 눈을 맞았다.
책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바람을 맞아 표지에서 바람 냄새가 난다.
친구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첫눈이 온다고 흐느적거릴 줄 알았더니 부적절한 사랑타령이다.
난 한마디로 요약해서 답을 보냈다.
“빨리 헤어질수록 이득이야.”
막내이모는 사랑은 없다고 했었다.
원주 시골에서 사는 친구는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사랑도 장사와 비슷하다.
이득이 남아야 거래가 이루어지지 손해만 보는 장사는 금방 문을 닫게 된다.
난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의 순간은 있지만 영원하지 않으니깐.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가을 초입에 이곳에 왔는데, 벌써 첫눈이 종일 내린다.
재빨리 스케치된 그림처럼 세월이 흘렀다.
이렇듯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다.
같은 계절이라도 올 때마다 많이 다르다.
나의 51살 겨울과 52살 겨울은 분명 다르다.
첫눈 얘기를 하다가 속절없는 이야기로 빠져버렸다.
이용자님이 풀을 달라고 하셨는데, 내가 불이요? 했다.
엉뚱한 내 대답에 모두들 웃어야했다.
헛소리가 들린 건 다 첫눈 때문이다.
아니다 꼴같잖은 사랑 때문이다.
이왕지사 삐딱한 사랑얘기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더 해야겠다.
사랑은 내가 괴롭힐 사람과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다가 제일 먼 사람이 되는 게 사랑이다.
그러나 오늘 첫눈이 문득 온 것처럼 인연도 문득 온다.
만남도 헤어짐도 다 문득문득 오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