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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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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하나


BY 새봄 2012-10-03

수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대출해 주고

수많은 책을 제자리에 꽂고 집으로 들어오면 밤 11시쯤 된다.

집에 사람은 없고 한 마리 개가 나를 반긴다.

꽃순 이를 안아주고 저녁밥을 먹고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면

칫솔 꽂이에 연두색 내 칫솔만 달랑 꽂혀있다.

 

십몇 년 전에 네 개의 칫솔이 있었다.

둘씩 둘씩 짝이 잘 맞는 넷이라는 숫자가 그땐 그게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사십쯤 이른 코스모스 피던 초가을날 칫솔은 세 개가 되었다.

세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는 참 불안전했었다.

별 능력도 없고 몸이 약한 여자가 앞에서 끌고

어린 아이 둘이 뒤에서 밀며 십년이 흘렀다.

 

딸이 일본으로 유학가면서 칫솔은 두 개가 되었다.

아들아이랑 자전거가 되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두 발로 뛰는 것보다는 자전거가 편했고 빨랐다.

이년동안 유학을 마치고 딸이 돌아와서

세 바퀴로 굴러가는 삼발이 자동차가 되니 더 편하고 빨랐다.

네 바퀴로 달리는 안전하고 큰 차를 타고 싶었지만

원래 있던 남편 바퀴는 이미 고장이 나서 다시 끼울 수 없었고,

남의 남자 바퀴는 너무 맞지 않아 끼울 수가 없었다.

 

칫솔 통에 칫솔은 그렇게 세 개로만 만족하고 살아갔다.

힘들고 외로울 때는 어디서 주워들은 시를 읊조렸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려도 세상이 나를 버려도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청승맞은 가요를 핏대를 세우며 불러제꼈다.

한 남자가 떠날 때 하늘을 보며 구름처럼 떠도는 부질없음이군! 했다.

바람처럼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직업을 전전하면서 나는 바람이려니 했다.

땅을 보며 흐르는 물처럼 살다보면 내 한 몸 가둘 곳이 오겠지 했고 말이다.

 

그리하여 2012년이 되었다.

아들이 지방으로 대학을 들어가서 칫솔은 두 개로 줄었다.

마음과 몸에 여유가 생겨 올 들어 처음 아파트 화단에 내가 좋아하는 화초를 심었다.

봄에 하얀 블라우스 마가렛과 연잎 닮은 한련화와 이태리 물봉선화를 심었다.

해바라기 씨와 백일홍 씨와 분꽃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길 기다리며 매일매일 화단으로 나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 없는 꽃과 마주앉아 나 혼자 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꽃과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초도 심었고, 떠돌이 잡초 까마중도 있고.

길가 보도블록에 끼여 살던 맨드라미도 데리고 왔다.

꽃씨가 자라 여름 꽃이 한창일 때 딸은 일본으로 취업이 되어서 떠났다.

달랑 내 칫솔만 남았다.

칫솔을 보면 혼자구나 하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옷을 넣을 수납장이 모자라 종이박스 수납장을 구입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리를 했었는데 수납장이 널찍해졌다.

비어있는 수납장과 내 마음이 같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에다 내 마음을 실어 한 장씩 한 장씩 허공으로 띄우며 나를 달랬었다.

어느 신이 혼자인 나에게 흔쾌히 선심을 써서 도서관 일을 주었다.

그 어느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차려먹고 치우고 출근을 하고

정신없이 바쁜 도서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먹물빛 밤이 된다.

아파트 화단엔 도서관뜰에서 얻어와 심은 국화꽃이 꽃망울을 이고 있고,

집안에 조촐한 화분과 다육식물이 나의 친구고

침대에서 같이 자는 개 한 마리가 나의 동반자가 된지 벌써 7년째다.

 

난 평범한 여자이고 싶었다. 보통이라는 삶을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는 것에 행복과 만족을 모르지만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사십대 초반에 동창모임이 있었는데 속에 것을 감추지 못하는

동창 하나가 그렇게 예쁘더니 네가 제일 늙었다고 나를 지적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탱탱했던 젊음이 괴사가 되어 나를 먹어버렸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옛날? 젊은 날? 싸아~~ 바람소리 같은 침묵일 뿐이다.

그런 것이 대수냐, 별거 아니다.

나는 지금 여유롭다.

내겐 꽃이 있고, 책이 있고, 글이 있고, 개 한 마리가 있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자식 둘이 칫솔 하나씩을 들고

칫솔 통을 채울 걸 믿기에 나는 지금의 여백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