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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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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방을 쓰다


BY 그대향기 2012-06-20

 

 

 

우린 요즘 각방을 쓴다.

아니 따로 잘 때가 더 많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있거나

대판 싸운 일도 없다.

그래서 하나도 안 서운하다.

사랑이 식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따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만나는 남편이 더 반갑기까지 하다.

남편의 거실 쇼파 위의 잠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동위원소 치료라는 좀 까다로운 치료를 하면서

남편은 독방에 나흘을 갇혔다가 온 적이 몇번 있었다.

이상한 약을 마시고 그 약 성분이 몸 밖으로 다 나올 때까지

독방에 갇혀서 단 한발짝도 외부 출입을 못했다.

밥도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왔고

그 누구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는 철저한 감금.

 

간호사도 의사도 없이 혼자서 그 약 성분이 다 배출되도록

물먹는 하마처럼 큰 페트병으로 한  아름 사 들고 간 물만

벌컥벌컥벌컥..................

목이 마를 때 마셔야 꿀맛이지 이건 완전 물고문이었다고 한다.

병원 반찬이 다 그렇듯이 밍밍~~해서 밑반찬으로 김치나 다른 반찬을 들고 갔었는데

쓰레기통도 나흘이 지나도록 비워가지 않고 비울 수도 없기에

휴지를 버릴 때도 김치냄새가   훅~올라와서

나중에는 쓰레기통도 열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완전한 사흘이 다 지나면   물과 함께  몸 밖으로 다 배출된다던 그 약

밥맛도 물맛도 다 잃을 지경이 되면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

퇴원하고 집에 와 안방에서 잠을 자던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내 달았다.

답답해서 잠을 못 자겠다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

폐쇄 공포증.

우리집 안방이 꽤 큰 방인데도 숨이 막혀 도저히 잠을 못 자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남편이라고 밤잠도 안 재우고 괴롭힌 나도 아닌데

벌써 이런 증세가 꽤 오래 되었다.

더러는 아무 이상이 없는지 안방에서 이튿날 아침까지  잘 자는 날도 있다.

내 허리 수술을 한 이유도 있지만 안방 침대는  대형 돌 침대다.

우리 부부가 누워 네 활개를 다 벌려도 상대를 안 괴롭힐 정도로 큰 사이즈다.

 

방도 크고 침대도 너른데 가끔 남편은 독방의 악몽으로 괴롭다.

우리 집에는 밤에 방문을 안 닫고 잔다.

아이들이 초등 학교에 입학하고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혹시라도 다른 방에 자던 아이가 아프거나

자다가 놀라서 울기라도 할 때 내가 못 들을 까 봐 안방 문도 아이들 방문도 열어두고 잤다. 

아이들이 다 큰 후에도 안방 문을 꽁꽁 닫고 자면 공연히 아이들이 궁금해 할 까 봐

아예 활짝 열어두고 잤다.

그렇다고 부부 일을 안하고 산건 아니고....

그런 이유로 열어두고 잤더니 이젠 방문을 닫으면 세상과 아이들과 단절이 되는

벽을 세우는 것 같아서  못 닫고 잔다.

 

언젠가 우리집 수리를 할 때 교실만한 방에서 다섯식구가 다 같이 잤는데

침대를 나란히 나란히 붙이고 잤다니까 열이면 열 사람이 다 놀랬다.

\"커텐이라도 치고 자지 어떻게 그냥 자요?\"

커텐을 치고 자면 아이들 호기심이 더 클텐데 엄마아빠가 좀 참지 뭘 그런걸 쳐서

돌아눕기만 해도 부시럭거려 아이들을 힘들게 할까.

거의 일년 가까이 커다란 방에서 신나게 뛰어 놀며 지냈던 추억이 있다.

가벼운 스킨쉽은 아이들한테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찐한 부부 일은 아이들 눈치 못 채는 시간에 쓰리살짝 ..다 하는 수가 생기더라는 것.ㅋㅋ

 

남편의 거실 잠이 언제까지가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본인은 더 모를테고.

하지만 오며가며 가벼운 입맞춤은 충실히 하고 사니 애정전선에는 이상 무~~!!!

서운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혼자서 겪어야 하는 잠 못드는 시간의 고독은?

마음이 좀 가라앉은 날에는 안방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남편이지만

언제 또 후다닥 일어나 거실로 내 뺄지는 우리 둘 다 모를 일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혼자 맞서 싸워야 하는 내면의 적이 더 무섭다.

그래도..그래도 오래오래 나와 우리 아이들 곁에서 건강해 주기만을 바란다.